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소설가 문지혁(46) 작가의 신작 ‘실전 한국어’(민음사) 소식을 접하고, 저는 제목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많은 독자가 ‘고급’을 예상했는데, 작가는 ‘실전’을 택했습니다.

“인생엔 고급이 없다. 특별하단 사람의 삶도 고급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공평한 말이 ‘인생은 실전’ 아닐까.”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작가가 남긴 이 말이, 이상하게도 저를 위로했습니다. ‘초중고로 이어지는 뻔한 순서에 비틀기를 주고 싶었다’는 그 마음이요.

‘실전 한국어’는 2020년 ‘초급 한국어’, 2023년 ‘중급 한국어’에 이은 7년에 걸친 ‘한국어’ 3부작의 완결편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한국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작가 자신을 닮은 또 다른 ‘문지혁’의 삶을 따라가는 연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고급’ 단계가 올 거라고요. 지금의 서툶과 실수가 끝나면, 능숙하고 우아한 어른의 시간이 시작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이 나이에도 여전히 헤매는 내가 괜찮을까 하는 걱정
  • 남들은 ‘고급’에 도달한 것 같은데 나만 ‘실전’에 묶여 있다는 조바심
  • 아무리 준비해도 매번 처음 겪는 일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작품이 이어질수록 그는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인생이 본래 그렇다는 걸, 저는 이 고백에서 오히려 안도했습니다.

그래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문 작가는 오토픽션(autofiction), 즉 자전적 이야기와 허구적 상상력이 뒤섞인 장르로 이 작업을 풀어냈습니다. 그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소설 속 인물은 모두 나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

저는 여기서 작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실전’의 실수들도, 어쩌면 다른 누군가를 대신 살아주는 가능성일지 모른다고요.

작가는 ‘이야기’를 ‘말이 안 되는 걸 모아 말이 되게 만드는 일’이라 정의합니다. 세계의 본질은 카오스(혼돈)이지만, 인간은 밤하늘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 듯 질서를 빚어낸다고요. 현실은 늘 부딪히고 깨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소설 속 중요한 메타포인 ‘끝말잇기’도 그렇습니다. 작가는 이 놀이를 인생의 은유로 봤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DNA라는 끝말을 물려주고, 우리는 그 단어로 또 다음 말을 이어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끊기지 않으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결론

‘인생엔 고급이 없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가장 공평한 위로였습니다. 누구도 ‘고급’에 닿지 않기에, 지금의 서툰 저도 뒤처진 게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작가가 건넨 실전의 언어를 이렇게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 ‘고급’이라는 도착지를 내려놓기 — 끝나면 편해진다는 기대 대신, 오늘의 실전을 그대로 받아들여 봅니다.
  • 잃은 ‘단어’를 적어보기 — 작가는 인생을 ‘단어를 잃고 얻고 되찾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요즘 내가 잃은 단어와 되찾고 싶은 단어를 한 줄씩 적어봅니다.
  • 이야기를 멈추지 않기 — 깨져도 다시 끝말을 잇듯, 오늘의 작은 한 걸음으로 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괜찮을까 묻는 마음에, 저는 ‘인생은 실전’이라는 그 공평한 한마디를 가만히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