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자주 무거우셨다면, 저와 함께 잠시 박물관 마당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돌 호랑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는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광화문 앞을 지키는 늠름하고 근엄한 해태상과 비교하면 어쩐지 귀엽고 해학적인 외모. 산중호걸이라기엔 다소 허술해 보이는데도, 이 아이는 지금 박물관을 지키는 수호신 격으로 서 있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봤을 때, 왜 마음이 풀렸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상하게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무섭게 생겨야만 지킬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석호(石虎, 돌로 만든 호랑이)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석수(石獸, 동물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예법서 ‘가례집람’에 따르면 석수는 주로 왕릉 입구에 세워져 묘를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와 양, 문무인석이 타고 다닌다는 말까지 종류도 다양했지요.
한길중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맹수의 왕’ 호랑이는 침입을 막는 수호의 의미가 강했다”며 “석호 한두 쌍을 무덤 바깥쪽으로 향하게 세워 묘지를 지키도록 했고, 마을 입구에 세워 수호신처럼 여기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수백 년 동안 누군가의 잠든 자리를, 마을의 입구를 묵묵히 지켜온 존재. 표정이 좀 엉성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비슷한 걱정을 안고 살지 않나요
이 석호를 보며 저는 우리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더 단단해 보여야 하는데, 더 근엄하고 빈틈없어 보여야 하는데, 자꾸 허술한 모습이 드러나서 걱정인 분들. 이런 내가 가족을, 팀을, 내 자리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한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뉴스가 전하는 사실 하나가 단단한 위로가 됩니다. 왕릉의 석호들이 통상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인 것과 달리, 18세기 이후 민묘(백성의 무덤)에 세워지기 시작한 호랑이들은 친근한 얼굴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열린마당의 석호도 민묘를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책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4’에서 민묘의 석호에 대해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새끼 호랑이처럼 민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썼습니다. 장식성이 뛰어나 일찍이 다 분실되고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도 했지요.
거의 남지 않아 더 귀해진 존재. 무서워서가 아니라 곁에 두고 싶어서 사라졌을 만큼 사랑받은 얼굴. 지키는 힘은 표정의 근엄함이 아니라 ‘그 자리에 계속 있어 주는 것’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 돌 호랑이가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걱정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석호에서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정리해 봅니다.
-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역할입니다: 석호는 싸우지 않습니다. 바깥을 향해 서 있는 것만으로 수호가 됩니다.
- 친근함도 힘입니다: 18세기 이후의 석호처럼, 다가가기 쉬운 얼굴이 오래 사랑받습니다.
- 쌍과 균형을 기억하세요: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석호가 석양(石羊)과 쌍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양과 호랑이가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혼자 다 지키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론
이달 초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등장한 돌 호랑이는, 귀엽고 해학적인 얼굴로도 충분히 수호신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석수의 전통 속에서, 18세기 이후 민묘의 석호들은 근엄함 대신 친근함으로 사람들 곁을 지켜왔습니다. 허술해 보이는 오늘의 나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는 수호신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해볼 만한 일 세 가지를 권해 봅니다.
-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들러, 이 석호의 표정을 직접 마주해 보세요.
- 관람 전후로 ‘석수’, ‘벽사’, ‘문무인석’ 같은 단어를 한 번씩 찾아보면 전시 밖 석물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 내가 지키고 있는 자리 하나를 떠올리고, 오늘은 그 자리에 있어 준 나를 칭찬해 주세요.
무섭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돌 호랑이는 오늘도 웃는 얼굴로 박물관을 지키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