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줄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안도의 숨부터 내쉬었습니다.

무료급식소 ‘밥퍼’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다일공동체가 서울 동대문구와의 행정소송에서 지난달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4년이 넘게 이어진 다툼이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누군가의 밥그릇을 지켜내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 그리고 끝내 지켜졌다는 사실이 함께 마음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밥퍼를 이끄는 최일도 목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밥퍼’ 거리를 세계 최고의 K나눔의 거리로 만드는 새 꿈을 꿔야지요.”

철거의 위기를 막 벗어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원망’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것. 저는 그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 그 사이의 마음고생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 동대문구는 2021년 다일공동체가 ‘밥퍼’ 건물에 가건물 2개 동을 증축하자 무허가 시설이라며, 이듬해 시정명령과 함께 건축이행강제금 약 2억800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 다일공동체는 “땅 소유주인 서울시와의 구두 합의를 거쳐, 당시 동대문구청장이 허가한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 2024년 12월 1심(서울행정법원)에서 구청의 시정명령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항소가 이어졌습니다.
  • 2심도 같은 판결, 그리고 대법원까지.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승소’ 한 단어로 끝날 일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견뎌낸 긴 마음고생이 있었습니다. 최 목사는 인터뷰에서 가장 슬펐던 점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밥퍼’를 혐오시설로 낙인찍어 지역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그 마음이 슬펐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오래 걸렸습니다. 싸움에서 진 것보다, 누군가에게 ‘쫓아내고 싶은 존재’로 여겨지는 일이 더 아프다는 것을요.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걱정될까

이 소식을 보며 “괜찮을까” 하고 마음 졸였을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작은 가게 주인, 동네 공방, 마을 모임을 꾸리는 분들. ‘내가 옳다고 믿고 해온 일이 어느 날 무허가, 시정명령, 강제금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말입니다.

특히 ‘구두 합의’ 같은, 서류로 단단히 남기지 못한 약속 위에 무언가를 쌓아 올린 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밥퍼조차 그 지점에서 4년을 다퉜으니까요.

그 걱정의 핵심은 결국 이것이라고 봅니다. 내가 선의로 해온 일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그런데 이번 일에는 우리가 붙잡을 만한 단단한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송 초기 시작된 서명 운동에 몇 달 만에 8000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그것도 멀리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도 있었다고 합니다. 밥퍼가 그 자리에서 30년 넘게 무료 급식을 해온 시간을, 이웃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작은 위로를 얻습니다. 묵묵히 쌓은 시간은,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의 서명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요.

또 하나는, 위기를 다툼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바꿔낸 발상입니다. 쫓아내기보다 밥퍼라는 브랜드를 살려 ‘K나눔과 봉사의 거리’로 승화시키자는 제안이 나오자,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지난해 50여 개국에서 890여 명이 찾았고, 올해는 지금까지 벌써 600여 명입니다.
  • 두 달 넘게 머무는 오스트리아 치과의사, 직접 연주를 들려준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도 있었습니다.
  • 수학여행으로 와서 봉사하고 용돈을 모아 기부하고 간 외국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착한 여행’, 즉 여행지에서 봉사와 나눔을 함께 경험하는 방식이 인기라고 합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밥퍼는 그 흐름을 끌어안았습니다.

결론: 오늘의 우리가 가져갈 것

철거위기를 이겨낸 ‘밥퍼’와 “K나눔의 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최일도 목사의 말은, 단지 한 급식소의 승소 소식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래 묵묵히 해온 일은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고, 위기조차 발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걱정을 안고 있는 분들께,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일을 조심스레 권합니다.

  • 선의의 약속도 기록으로 남기기: 밥퍼가 ‘구두 합의’ 지점에서 오래 다퉜듯, 중요한 합의는 가능한 한 문서로 남겨 두는 것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 내 곁의 ‘8000명’을 평소에 쌓아두기: 결정적 순간의 지지는 평소 쌓은 신뢰에서 옵니다. 이웃과의 작은 관계가 가장 단단한 방어막입니다.
  • ‘착한 여행’으로 나눔에 한 발 들이기: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까운 나눔의 자리에 한 번 발걸음을 더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4년을 짧게 만들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묵묵한 시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이 소식이, 비슷한 걱정 앞에 선 당신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