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저는 인천시립박물관의 전시 소식을 보다가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인천에 정착한 한 소년이, 동양화가의 꿈을 키워 끝내 한국 화단의 중진이 된 이야기였습니다.

창운 이열모 화백(1933∼2016). 그의 작품과 삶을 모은 특별전 ‘어지러이 푸르른―필묵의 귀환’이 16일부터 인천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의 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 뿌리내린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붓을 잡았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걱정을 합니다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나중에 의미가 있긴 할까."

저도 그렇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가 비슷한 걱정을 안고 삽니다. 시작한 곳과 다른 곳에 서 있을 때, 내가 쌓아온 것들이 흩어지진 않을까 불안해집니다. 정말 괜찮을까, 하고요.

이 화백 역시 인천이라는 새 터전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천중학교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와 성균관대 교수로 후학을 길렀습니다. 그가 남긴 담백하고 격조 높은 문인화는, 어쩌면 그 모든 불안을 묵묵히 견딘 시간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흩어지지 않고, 돌아온 것들

위로가 되었던 건 그다음 이야기였습니다. 지난해 유족은 고인의 작품과 유품 360여 점을 시립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 꽃과 새, 사군자, 게를 그린 문인화(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선비의 그림)와 인물화
  •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10년대 산수화·추상적 풍경화까지
  • 그가 직접 쓰던 붓과 먹, 물감, 사생 여행에서 찍은 풍경 사진

특히 인천에서 자란 화가답게 포구를 그린 ‘군선(群船)’과, 학창 시절 다닌 웃터골 인천중학교 풍경을 담은 작품도 함께 걸려 있습니다. 떠나온 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림 속에 살아 돌아온 셈입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단단한 지점

김태익 시립박물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화백은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풍경 스케치를 철저히 한 뒤 작품을 완성했다. 자극적인 시각 매체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그의 작품은 누워서 산수를 유람한다는 와유산수(臥遊山水)의 경지를 선물할 것이다."

저는 이 ‘철저한 스케치’라는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화려한 결과보다, 먼저 충분히 바라보고 천천히 쌓아간 그 태도 말입니다. 우리의 걱정도 그렇게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빛나지 않아도, 성실히 쌓은 시간은 어딘가로 돌아온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전시에서 받은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기증의 온기는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시민 33명과 단체·기관 2곳이 유물 1669점을 내놓았고, 올해는 지난달까지 118점이 접수됐습니다. 개관 이후 기증된 유물은 5만7000여 점에 이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도시의 기억이 됩니다.

결론

낯선 곳에서 출발한 한 화가의 ‘필묵 여정’은, 흩어질까 걱정하는 우리에게 조용히 답합니다. 성실히 쌓은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돌아온다고요.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을 적어둡니다.

  • 직접 만나보기: 인천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어지러이 푸르른―필묵의 귀환’ 특별전을 천천히 둘러보세요.
  • ‘군선’과 인천중학교 풍경 찾아보기: 인천이라는 터전이 어떻게 그림이 되었는지, 두 작품 앞에서 잠시 머물러 보시길 권합니다.
  • 나의 작은 기록 남기기: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의 사진 한 장, 메모 한 줄이 훗날 나를 위로하는 기증품이 됩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시간도, 분명 어딘가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