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SK온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석희 전 사장이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을 책임지는 수석부사장(EVP)으로 합류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 수장이 글로벌 빅테크 최고위층으로 자리를 옮긴 이례적 사례다. 이 인사를 시장과 산업 사이클의 흐름 속에 놓고 차분히 짚어본다.

현황: 오늘 발표된 인사의 골자

19일 인텔은 이 전 사장을 자사 파운드리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물론 첨단 패키징(여러 칩을 하나로 묶어 성능을 끌어올리는 후공정 기술) 조직까지 총괄한다.

이력을 보면 합류의 맥락이 분명하다.

  • SK하이닉스 CEO: 2018~2022년
  • SK온 CEO: 2023~올해, SK그룹 배터리 사업 주도
  • 학력: 서울대 재료공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 인텔 경력: 2000~2010년 엔지니어로 근무

그는 SK하이닉스 사장 재임 시절 인텔 낸드사업부(현 솔리다임) 인수를 주도하며 인텔과 인연을 이어왔다. 이날 SNS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인텔 복귀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의미가 있다. 큰 기회가 놓인 인텔 파운드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엔지니어 출신이 다시 인텔로 돌아온 셈이어서, 단순한 외부 영입 이상의 상징성이 읽힌다.

원인: 왜 지금, 왜 이 사람인가

이번 인사를 이해하려면 인텔이 처한 산업 사이클부터 봐야 한다.

첫째, 실적 부진이라는 구조적 압력이다. 인텔은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이지만, 2024년 2분기 이후 거의 매 분기 순손실을 내고 있다. AI 시장에서 CPU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역할이 커지며, 그동안 쥐고 있던 반도체 패권을 엔비디아에 내준 것이 직접적 배경이다. 존재감 약화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는 전형적 하강 국면이다.

둘째, 사업 다변화 전략의 가속이다. 인텔은 활로로 파운드리를 택했다. 2024년 파운드리 사업을 출범시키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칩을 생산하기로 했고, 올해 들어 고객사 확보에 속도가 붙었다.

  • 2026년 4월: 테슬라가 인텔의 1.4나노급(14A) 공정을 활용해 AI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
  • '탈(脫)엔비디아'를 노리는 구글도 자체 칩인 텐서처리장치(TPU) 생산 일부를 인텔에 맡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짐

문제는 파운드리가 '만년 적자' 사업이라는 점이다. 고객사는 늘고 있으나 수율과 공정 안정화라는 난제가 남아 있다. 인텔이 SK하이닉스 흑자 전환과 배터리 사업을 모두 경험한 제조·운영 전문가를 데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전망과 시사점: 거시 흐름 속 좌표

세 가지 축으로 앞으로의 흐름을 가늠해 본다.

1. AI 사이클이 만든 인재 이동. 한국 반도체 기업의 위상이 급상승한 결과가 이번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 패권이 메모리와 후공정으로 확장되면서, 한국 출신 경영진의 글로벌 협상력이 커진 국면으로 읽힌다.

2. 가교 역할의 현실화 가능성. 이 수석부사장은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 개발과 고객사 확보에 적극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 반도체 설계 회사,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 인텔 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이는 국내 후방산업의 신규 수요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3. 삼성과의 경쟁 구도. 인텔 파운드리의 반등은 삼성 파운드리와의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1.4나노급 선단 공정에서 양사가 부딪히는 국면이 가까워졌다.

다만 이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테슬라·구글·MS라는 고객 명단이 실제 양산 성과로 이어질지는 향후 분기 실적이 가늠자가 된다.

결론

'SK맨' 이석희의 인텔 합류는 AI 시대 한국 반도체 위상과 인텔의 파운드리 반등 의지가 맞물린 인사다. CPU 패권을 엔비디아에 내준 인텔이 제조·운영 전문가에게 활로를 맡긴 셈이다. 독자가 점검할 다음 단계는 다음과 같다.

  • 인텔 파운드리 실적을 분기 단위로 추적: 순손실 흐름이 멈추는지 확인한다.
  • 14A 공정 고객사의 양산 진척 점검: 테슬라·구글·MS 건의 실제 진행 여부를 본다.
  • 국내 소부장·설계 기업 동향 주시: 가교 역할이 현실화되면 수혜 범위를 가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