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저는 이 신간 소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히 가슴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어요.
‘왜 늘 남에게 맞춰줄까’라는 문장이, 마치 누군가 제 일기장을 슬쩍 들여다보고 적어둔 말 같았거든요.
회의에서 다른 의견이 있어도 “네, 괜찮아요”라고 먼저 웃어버린 날. 친구의 부탁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거절 한마디를 못 하고 돌아서서 후회했던 밤. 그런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책, 잉그리드 클레이튼이 쓴 『포닝』(센시오, 416쪽, 2만3800원)을 중심으로, 저처럼 ‘늘 맞춰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가르치려는 글이 아니라, 같이 한숨 한 번 쉬고 가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순응’은 착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의 전략이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위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5년 이상 클리닉을 운영해 온 저자는, 끝없이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온 사람들의 그 행동에 이름을 붙입니다. 바로 ‘순응’이에요.
저자는 순응이 단순한 착함이나 배려가 아니라, 몸에 남은 치열한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한 문장에 저는 한참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흔히 위협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반응을 세 가지로 알고 있죠.
- 싸우거나(fight)
- 도망치거나(flight)
-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거나(freeze)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하나를 더합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고 비위를 살피는 ‘순응(fawn)’이라는 반응이에요.
여기서 잠깐 용어를 짚자면, 순응은 ‘방어기제’입니다. 방어기제란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보호 장치를 말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남에게 맞추는 건, 의지가 약해서도 성격이 무른 탓도 아니었던 거예요. 위협 앞에서 나를 지키려고 몸이 먼저 택한 길이었던 겁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분명 이런 걱정을 안고 계신 분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 “이렇게 평생 맞추고만 살다 나만 닳아 없어지는 건 아닐까.”
- “싫다고 말하면 관계가 깨질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 “결국 문제는 나인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하고 약한 사람인 걸까.”
특히 마지막 걱정이 가장 아픕니다.
저자는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뒤따라오는 수치심이 매우 고통스럽고 폭력적이라고 말합니다.
맞춰주고도 돌아서서 “내가 왜 또 그랬을까”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 마음. 그게 바로 수치심이에요. 맞추느라 한 번 아프고, 맞춘 나를 미워하느라 또 한 번 아픈 셈이죠.
여기서 책이 건네는 위로가 있습니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소용돌이에 갇혀 순응이라는 방어기제를 갖게 된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내가 문제다’라는 그 무거운 문장을, 오늘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그렇다면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발을 디딜 단단한 자리는 어디일까요.
저는 이 책에서 그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1. ‘왜’를 먼저 이해하기
저자는 행동을 다그치기 전에, 왜 그런 반응이 생겼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다음에 또 맞춰주고 후회가 밀려온다면, 자신을 혼내는 대신 이렇게 물어봐 주세요. “나는 지금 무엇이 무서워서 맞췄을까?” 비난이 아니라 질문으로 바꾸는 것, 그게 회복의 첫 단추입니다.
2. 바꿀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사실
순응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방식을 바꿀 힘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말이 참 좋았어요. 잘못은 내 탓이 아니지만, 회복의 열쇠는 내 손에 있다는 뜻이니까요.
3. ‘타고난 자아’라는 토대 위에 다시 서기
책이 안내하는 회복의 길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모입니다.
‘내가 문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타고난 자아를 중심으로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회복하는 일.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다시 타인과 다정한 관계를 맺는 일.
여기서 중요한 건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맞춤을 멈춘다는 건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도 다정할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일이더라고요.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작은 연습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이런 것부터 해보기로 했어요.
- 하루 한 번, 작은 거절 연습: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요” 한마디를 가장 안전한 상대에게 먼저 건네보기.
- 수치심이 올라올 때 멈추기: 자신을 탓하는 말이 떠오르면, “이건 생존 전략이었어”라고 한 줄로 바꿔 말해주기.
- ‘맞춤’과 ‘배려’ 구분해보기: 내가 원해서 한 친절인지, 무서워서 한 맞춤인지 잠들기 전 단 한 문장으로 적어보기.
작은 기록 한 줄이 쌓이면, 어느 날 ‘왜 늘 남에게 맞춰줄까’라는 질문의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결론: 맞춰온 당신은, 사실 너무 열심히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오늘 함께 본 『포닝』(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416쪽, 2만3800원, 센시오)의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남에게 늘 맞추는 ‘순응’은 착함이 아니라, 위협 앞에서 나를 지키려 한 생존 전략이다.
- 그 뒤에 따라오는 수치심은 고통스럽지만, 순응을 갖게 된 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 그러나 바꿀 힘은 우리 안에 있고, 타고난 자아를 토대로 다시 다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니 늘 맞춰온 당신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오래 너무 열심히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마지막으로, 오늘부터 붙잡아볼 다음 단계를 권합니다.
- 오늘 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바꾸기 — “내가 또 왜 그랬지” 대신 “나는 무엇이 무서웠을까”로.
- 가장 안전한 관계에서부터 작은 거절 한 번 연습하기 — 거창한 단절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다정한 거리 만들기.
- ‘내가 문제다’라는 문장을 내려놓고, 회복의 열쇠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믿어보기.
오늘 하루도, 남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한 번쯤 맞춰주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