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뉴스를 봤을 때,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1982년 만들어진 성냥 자동 제작 기계, 의성 윤전기가 국가유산청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그것은 단순한 기계 문화재 지정 뉴스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작은 것들이 한 걸음씩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성냥이 선물이고 부적이던 시절

1978년 8월 11일, 동아일보에는 '성냥값 18% 올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가격 인상이 신문 기사가 될 정도로 성냥은 국민 생활필수품이었다. 밥을 짓고, 불을 지피고, 향을 피울 수 있는 생존의 도구였다.

그런데 성냥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사 가는 이웃에게 "모든 일이 불꽃처럼 잘 이뤄지길" 기원하며 성냥을 선물했다. 뱃사람들은 성냥갑에 그려진 오리를 안전을 기원하는 부적처럼 여기며 지녔다. 성냥은 도구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1982년, 속도의 시대로

의성 성냥공장은 1980년과 1982년 각각 윤전기를 도입했다. 1982년 윤전기는 800t의 무게로 1회 40분~1시간 가동해 약 198만 개비(3600갑)를 생산했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던 것을 이 거대한 기계가 한 시간에 198만 개를 찍어낸다.

1970년대 의성 성냥공장 운영진이 일본 견학을 다녀온 후 "우리나라에도 성냥 생산 자동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개발에 나섰다. 그들은 생산성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끝나고 남은 것

의성 성냥공장은 1954년 개점해 59년을 버티다 2013년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공장이었다. 일회용 라이터가 보급되고, 전기와 가스 문명이 발달하면서 성냥의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국가유산청 학예연구사 강석훈은 말한다. "의성 성냥공장 윤전기는 지금도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국내에서 온전하게 보존된 성냥 자동 제조기로는 유일하다"고. 그 거대한 기계는 아직도 움직일 수 있다. 멈춘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잃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물리적 물건들. 빠른 효율성에 수작업의 온정. 편리함에 의례와 마음씀. 그것들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한 걸음씩 멀어질 뿐이다.

의성 성냥공장은 지금 건물과 부지를 활용해 내년 개관을 목표로 전시관과 디자인센터를 짓고 있다. 1982년산 800t의 윤전기는 그곳에 설 것이다. 예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된 그 기계를 보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성냥불을 기억할 것이다. 성냥갑 오리를 쓸어내며 느꼈던 섬세한 진동을. 그 작은 불이 조명하던 밤 밥상을.

결론

1982년産 의성 윤전기가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은 단순한 기계 보존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붙드는 방식이다. 당신도 그런 마음이라면:

  • 내년 의성 성냥 전시관 개관 시 직접 방문해 800t의 윤전기를 보기
  • 일상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그 기억을 누군가와 나누기
  • 버려지는 생활도구나 가게들을 보며 그곳에 담긴 삶의 시간을 한 번씩 생각해보기

성냥불처럼 작지만 따뜻했던 것들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