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지난달 30일 펼쳐진 공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긋남'이었다. 무대 위 바이올린 한 대가 정확히 녹음된 소리와 일치하려 하지만, 미세한 시차가 그 둘 사이를 벌린다. 그 좁은 틈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니라, 한 편의 몰입된 경험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낯선 만남이 주는 떨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미디어아트 듀오 '김치앤칩스'의 협업은 처음에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은 양인모의 순수한 현악기 소리와 빛과 시공간으로 작업해 온 미디어아트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 의심 속에서 약 90분간 인터미션 없이 펼쳐진 무대는 소리와 빛이 누가 주역이 되지 않고 대등하게 맞물리는 경험을 선사했다.
스티브 라이시의 '바이올린 페이즈'에서는 10개의 음으로 이뤄진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지만, 실연과 녹음된 연주 사이에 생기는 미세한 속도 어긋남이 새로운 청각적 감각을 피어나게 한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서는 서정적인 연주에 맞춰 연기가 흘러다니고, 마지막 곡 'LAD'에서는 선율보다 소리의 질감과 운동성 자체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무대 전체를 감싸는 조명과 그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거칠고, 연약하고, 때로 강렬하게 바이올린의 흐름을 따라간다.
혹시 따라가지 못할까봐
이런 경험이 자꾸 불안을 일으킨다는 걸, 나는 안다. 낯선 형식의 공연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이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맘이 생기는 것. 고전부터 현대 미니멀리즘까지 방대한 시간을 아우르는 작품들이지만, 그것들이 모두 반복과 지속을 통해 관객을 깊은 몰입으로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알기는 어렵다. 우리는 분석하려 드는 습관이 있고, 무언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을 느낀다.
양인모 자신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1부-인터미션-2부'의 공연 형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몰입된 흐름이 만들어 내는 경험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다." 낯선 형식이라는 것은, 결국 '분석하라'는 초대가 아니라 '흐르는 것을 따라가 보라'는 초대다.
그 틈에서 피어나는 것
공연이 끝나고 나서 깨달은 건, 소리와 빛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었다는 거였다. 두 감각이 대등하게 맞물려 클래식 공연이 하나의 공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무대였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불안해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어긋남'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피어날 공간'이라는 깨달음과도 닮아 있었다.
불완전해 보이는 것들, 낯선 것들, 따라가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 그 안에서도 하나의 몰입된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론
현의 울림과 빛의 대등한 만남이 보여준 것은 예술의 새로운 형식만이 아니었다. 낯설 수 있는 경험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위로였다. 다음에 비슷한 낯선 것을 만날 때, 분석하려는 맘을 놓고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 틈에서 무언가 새로운 감각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