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세대를 건넌 해상업의 신화

1957년 전남 장흥 출생의 김점배 알카우스트레이딩 회장이 중학교 시절 들었던 문장은 단순했다. "배를 타면 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보충수업을 하던 교감선생님의 말이었고, 그 고향에선 강진 출신의 김재철 동원산업 명예회장 같은 선례도 있었다. 가난이 몸에 밴 시절,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계층 상승의 경로였다.

뉴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이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여수수산고등전문학교(현 전남대 여수캠퍼스)로 진학한 뒤, 5년간 해상 생활을 하면 단기 군사교육만 받고 병역 의무를 마칠 수 있는 특례보충역 제도를 활용했다. 바다가 곧 교육의 장이자 생계 수단, 그리고 제도의 틈을 활용한 신분 상승의 통로였던 시대였다.

원인: 1979년 유류파동이 던진 시금석

그의 삶으로 첫 번째 파고가 몰려온 것은 1979년이었다. 이란 혁명으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원양어업은 산업의 근간이 흔들렸다. 원양어업은 본질적으로 '기름장사'였다. 먼 거리 항해를 위해 연료비가 전체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기름값 폭등은 곧 사업 존폐의 위기였다.

당시 김 회장이 다니던 회사는 "고꾸라지기 직전까지" 갔다. 이것은 단순한 개별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원양어업 전체가 맞닥뜨린 구조적 충격이었다. 연료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산업 특성상, 환율과 유가라는 두 거시 변수가 동시에 악화하면 회피할 수 없었다.

전망: 오만 진출과 산업 사이클의 재편

위기는 그를 오만으로 몰아갔다. 1981년 오만 도착 후 그는 현지 수산회사 관리직을 거쳐, 2000년 알카우스트레이딩을 설립했다. 뉴스에 따르면 이후 "한국과 일본, 아프리카, 유럽 시장을 개척하면서 수출처를 넓혔고" 오징어, 한치, 갑오징어, 돔, 민어, 갈치 등 다양한 어종을 취급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성장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재편의 신호였다. 1979년의 유류파동 이후 한국 원양어업은 지역 다변화와 현지 연계를 통해 글로벌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동남아와 중동 지역에 거점을 두고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이 생존 키워드가 된 것이다.

현재 시점의 의미: 신용과 거래 관계의 중요성

2026년 현재 시점에서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 회장은 "돌아보니, 사람은 장사는 신용으로 한다"고 회고했다. 1979년 위기 속에서도 오만 진출이라는 과감한 이주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신뢰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국적 해상업은 선박, 연료, 항만 접근권 등이 정치·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산업이다.

현대 원양어업이 직면한 환경은 더 복잡하다. 국제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 각국의 수산정책 변화, 해수 온난화에 따른 어자원 이동, 그리고 환율·유가 변동성이 모두 겹쳐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지역 거점 구축과 현지 신용 자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결론

"배 타면 돈 번다"는 말이 현실이 되려면, 단순한 기회 포착을 넘어 거시 환경 변화를 읽고, 위기 속에서도 신뢰와 네트워크를 지켜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1979년의 유류파동에서 회피한 것이 아니라 지역 재편으로 대응한 선택이 45년 후 다국적 기업인으로의 위치를 만들었다.

현재 해상 산업 진출을 고려하거나, 거시 리스크를 마주한 사업가라면: 첫째, 환율·에너지·정책 변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을 지속하라. 둘째, 단일 시장·지역 의존을 피하고 수출처 다변화 계획을 사전에 수립하라. 셋째, 위기 시 빠른 재배치가 가능하도록 현지 거점 네트워크를 평시부터 구축해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