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왕의 남자', '자산어보' 같은 대작들을 만든 천만 감독이 숏드라마에 도전한다니요. 작은 세로 화면에서 뭔가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동시에 뭔가 날카로운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만약 거장도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면, 창작의 세계가 정말 바뀌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두려움과 용감함 사이에서
이준익 감독은 처음 숏드라마 제안을 고사했습니다. 뜻밖의 결정처럼 보이지만,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 모두이 마음속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 뛰어들었다가 미숙함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 영화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위험한 선택이 될 것 같았어요."
이것은 단순한 장르 선택의 고민이 아닙니다. 이미 정해진 위치에서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느끼는, 우리 모두이 걱정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혹시 실패하면 어떻하나, 혹시 이전 평가마저 무너지면 어떻하나 하는 마음이죠.
그러나 감독은 곧 이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후배 창작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 생태계가 쇠퇴하는 와중에 젊은 친구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출구가 무엇일까, 당장은 숏폼이 아닐까 싶었어요."
스튜디오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감독님 본인은 뛰어들지 않으시냐고요."
영화인들의 현실, 우리 모두의 고민
이준익 감독이 숏드라마 제안을 받을 당시, 그는 허균을 다룬 영화 '교산'의 투자가 무산돼 제작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여전히 장편 '나는 반딧불이'를 준비 중이지만, 감독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장편영화 시장은 점점 더 붕괴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는 게 우리를 위로도, 불안하게도 만듭니다. 전통적인 장편영화 시장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영상 창작자, 글 쓰는 사람, 음악인, 디자이너 — 창작으로 먹고사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전문 분야가 점점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닐까. 내가 배운 방식으로는 더 이상 먹고 살 수 없는 건 아닐까. 새로운 걸 배워야 하나, 그런데 내 나이에 가능할까.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
그런데 이준익 감독이 건넨 조언을 읽다 보면, 그 고민들의 한 가운데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시장 구조가 변화하는 시기엔 창작자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 방식이 숏폼이면 어떻고, 유튜브면 어떻고, 인공지능이면 어떻습니까. 결국 이야기 산업의 다른 형태일 뿐인데요. 창작자에겐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주는 힘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라는 점입니다. 플랫폼이 바뀌고 형식이 바뀌어도, 창작하는 행위 자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능력 — 이것이 결국 창작자를 지켜주는 유일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은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극장판을 달라"는 관객 요청이 나올 정도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낯선 세로 화면도,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도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제대로 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변하는 시대에 창작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을 배우는 것보다,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준익 감독처럼 우리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 지금 당신이 만들 수 있는 형식을 찾기: 영화가 아니면 숏폼, 숏폼이 아니면 유튜브, SNS, 팟캐스트, 글 — 당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형식을 하나 정해 시작하세요.
- 좋은 이야기에 집중하기: 유행하는 소재를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묻고, 그것을 만드세요.
- 멈추지 않기: 플랫폼이 바뀌어도, 시장이 바뀌어도, 계속 만드는 사람만이 결국 살아남습니다.
당신이 창작자라면, 그리고 요즘 불안하다면, 이준익 감독의 한마디를 기억해 보세요. "창작자에겐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말 속에 우리 모두의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