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음이 들었던 것

고려대 박물관의 소식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자꾸 아버지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초상화 전시라고 하니 뭔가 엄숙하고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열린 특별전 '老年을 넘어 熟年의 시간'은 우리가 외면해 온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자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주름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은 얼굴들. 16세기부터 17세기 조선의 화가들이 남긴 그 얼굴들을 보면서, 저는 '아, 우리가 이렇게나 오래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습니다.

나이 듦이 쇠락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보통 '늙어간다'는 표현부터 불안해합니다. 힘이 빠지고, 외로워질까봐, 혼자일까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의 말을 들어 보세요. "다가오는 새로운 생의 단계를 늙어감이 아닌 익어가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전시는 5부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 '어른의 얼굴'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주름을 그대로 드러낸 초상들입니다. 영정조 시대 대사헌을 지낸 조정진(1732∼1792)의 초상을 보면 안면의 주름과 콧볼이 음영법으로 입체감 있게 살아 있고, 눈썹과 수염의 결도 치밀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정교하게 그려낸 것입니다.

걱정과 그 속의 위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걱정이 자꾸 나옵니다. 이 주름들이 약한 증거가 될까봐, 사회에서 밀려날까봐. 하지만 전시의 다른 부분들을 보면, 옛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을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1부 '오래 산 사람들'에서는 노년을 초월적 존재로 그렸습니다. 죽음마저 넘어선 신선들이 바다 위를 유유히 거닐고, 푸른 소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입니다. 2부 '장수의 염원과 상징'에서는 십장생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물건들이 나옵니다. 나이 오래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시를 본 후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외면해 온 '주름'은 실은 한 사람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현실도 함께 마주하기

다만 전시는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3부 '노년의 그늘과 돌봄'에서는 빈곤과 질병, 소외라는 현실을 다룹니다. 옛날에도 그랬다는 뜻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축복과 함께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4부 '익어가는 나날'에서는 벗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시간들이 펼쳐집니다. 1609년 과거시험에 합격한 동기들이 60년 뒤 다시 만나 연 잔치, 그런 것들입니다.

결론

오늘 이 전시는 저에게 하나의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주름도, 약함도, 외로움도 함께 안고 살아가되, 그것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시간이라고 바라보자는 초대입니다.

당신이 혹은 당신의 부모님이 나이 든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있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 봐 보세요. '그게 정말 끝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전시는 9월 12일까지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직접 가서, 105건의 유물과 함께 그 질문에 천천히 답해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