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잠시 숨을 멈췄습니다
저는 요즘 자주 지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끝나지 않는 메신저 알림 앞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닳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숨어 있기 좋은 서해의 섬… 옥빛을 닮은 물빛[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이라는 제목을 보았습니다. 충남 보령의 작은 섬, 삽시도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그 글자를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숨을 멈췄습니다. '숨어 있기 좋은 섬'이라는 표현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거든요.
"지금 삽시도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요. 옥빛을 계속 닮아가고 있거든요."
펜션 주인 김태연 씨의 이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서해라고 하면 으레 거무튀튀한 펄 같은 물색을 떠올리는데, 삽시도는 고려청자의 비췻빛, 옥구슬 빛처럼 우아한 물색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물빛을 본 적도 없으면서,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어떤 걱정을 안고 있을까요
이 글에 마음이 머문 분이라면,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예요.
- "이렇게 쉬어도 괜찮을까" 하는 죄책감
- 막상 떠나도 노트북과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
- 거창한 휴가를 낼 여유는 없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버티는 것도 힘든 마음
저 역시 그렇습니다. 쉼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쉬는 순간에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이 삽시도 이야기에서 제가 위로받은 지점은, 쉼과 일을 굳이 떼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었습니다.
워케이션, 일과 쉼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방식
이 뉴스는 삽시도를 워케이션(workation) 의 무대로 소개합니다. 워케이션은 영어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는 방식이죠.
뉴스에 담긴 삽시도의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노트북 옆에는 바다가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둘레길이 있으며, 퇴근 후 네온사인 대신 붉은 낙조가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생각했어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쉼' 자체가 아니라, '쉬면 모든 걸 놓쳐버릴 것 같은 불안'이라고요. 워케이션은 그 불안에 대한 하나의 다정한 대답인지도 모릅니다.
뉴스에 따르면, 워케이션은 인구 소멸을 겪고 있는 지방도시들에 '체류형 관광'의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쉼이, 또 다른 곳의 숨통이 되어주는 셈입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면삽지'
삽시도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면삽지'였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면삽지는 삽시도 최고의 절경입니다. 약 25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조그만 섬과 이어지는 깨끗한 모래 해변을 걸을 수 있고, 해안절벽의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이 있다고 해요. 바닷가 동굴에서 짜지 않고 시원한 약수가 솟아난다니, 읽으면서도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마음을 붙잡은 건 그 이름의 뜻이었습니다.
면삽지는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변할 때 삽시도에 붙었다가 떨어진다. 바닷물이 들이차면 더 이상 삽시도에 속한 땅이 아니다. 그래서 '면할 면(免)'자를 쓴다.
면삽지는 하루 두 번, 삽시도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받는' 땅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마음이 조금 풀렸습니다. 사람에게도 가끔은 이런 면제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구나, 하고요.
밥벌이하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무엇으로서 짊어진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본체와 떨어져 잠깐 외딴 섬이 될 수 있는 시간.
그건 도망이 아니라, 다시 붙기 위한 썰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쉬어도 괜찮을까"라는 분께
혹시 지금 "이렇게 쉬어도 괜찮을까" 망설이고 계신가요.
저는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어요. 면삽지가 하루 두 번 삽시도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 것처럼, 우리의 쉼도 영영 떠나는 일이 아니라고요. 잠깐 면제받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면제는, 자연이 매일 두 번씩 허락하는 당연한 리듬입니다.
괜찮습니다. 잠깐 외딴 섬이 되어도 괜찮아요.
삽시도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 (실용 정보)
마음만 위로받고 끝나면 아쉬우니, 뉴스에 담긴 실제 정보도 정리해 둘게요.
가는 길
- 출발: 보령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페리호 탑승
- 소요 시간: 약 50분이면 삽시도 술뚱선착장 도착
- 인근 원산도는 보령해저터널로, 안면도는 해상 교량으로 이어지며 섬이 육지로 변하고 있지만, 삽시도는 여전히 태고적 그대로 외딴 섬으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섬에서 누릴 수 있는 것
- 워케이션 거점: 선착장 바로 앞 어촌체험휴양마을 카페.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커피를 마시며 일할 수 있는 곳
- 자전거 라이딩: 워케이션 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해변도로를 한가롭게 달릴 수 있습니다
- 삽시도 둘레길: 수루미해수욕장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나오는, 송림이 우거진 약 5km의 호젓한 산책길
- 면삽지 트레킹: 250여 개 계단 아래 모래 해변과 해식동굴, 그 안의 샘물
- 갯벌 체험: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바지락 캐기, 낙지와 박하지(돌게) 잡기, 방파제 낚시
참고로 해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삽시도회식당 앞마당을 지키는 검은 강아지 '득실이'가 뒤뚱뒤뚱 쫓아온다고 해요. 이런 사소한 장면 하나가, 사실은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기고, 갯벌에서 나는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서해 섬의 매력이다.
결론: 우리에게도 하루 두 번의 면제가 필요합니다
'숨어 있기 좋은 서해의 섬… 옥빛을 닮은 물빛[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은 단순한 여행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는 다정한 허락처럼 읽혔습니다.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삽시도는 보령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페리로 약 50분, 옥빛 물색을 닮아가는 서해의 외딴 섬입니다
- 워케이션을 통해 일과 쉼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수 있고, 이는 지방의 체류형 관광에도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 하루 두 번 의무에서 면제되는 '면삽지'처럼, 우리에게도 잠깐 외딴 섬이 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친 우리가 오늘 바로 할 수 있는 작은 다음 단계를 제안하며 글을 맺습니다.
- 오늘은 '하루 두 번의 면제' 시간을 정해보세요. 점심 식후 10분, 잠들기 전 10분만이라도 알림을 끄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썰물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예요.
- '숨어 있기 좋은 섬'을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세요.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 출발 페리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면, 마음이 무너지는 날 '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 거창한 휴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노트북 옆에 바다를 두는 워케이션처럼, 일상 속에서 일과 쉼을 조금씩 섞어보세요. 쉼은 도망이 아니라, 다시 붙기 위한 자연스러운 리듬이니까요.
괜찮습니다. 잠깐 외딴 섬이 되어도, 우리는 결국 다시 뭍에 닿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