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한국 조선사에 향한 미국의 공식 기술 조사
8일 방위사업청과 방산업계 발표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와 해군은 최근 한국 조선사들에 전투함과 급유함에 대한 정보 요청(RFI·Request for Information)을 보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전투함 설계·건조 역량 자료를 제출했으며, 삼성중공업도 급유함 분야에 회신해 국내 조선 3사가 모두 응했다.
RFI는 정부가 정책 사업 추진에 앞서 가격, 인도 조건, 건조 능력, 생산시설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 조사 단계다. 업계는 이번 조사가 단순한 기술 검토를 넘어선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비전투함뿐 아니라 법적으로 해외 건조가 엄격하게 금지된 전투함까지 관련 정보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간) 나토 정상회의 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히고 우수한 선박 제조 역량을 가진 기업들을 소개한 직후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우리 기업들의 선박 제조 역량을 소개했다"고 전했다.
원인: 미국의 함정 부족과 번스-톨레프슨법의 갈림길
미국의 움직임 뒤에는 두 가지 거시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미국의 함정 건조 역량 부족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최근 전략수송선과 벌크연료선 등 비전투함 2척에 대해 해외 조선소 건조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미국 내 조선 산업의 공급 능력 한계를 인정하는 신호다. 미국이 신규로 건조하려는 함정 시장 규모는 1조750억 달러(약 1600조 원)에 달한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법적 우회 검토다. 지금까지 미국은 번스-톨레프슨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미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의 개정이나 이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의 발동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G7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겠냐"고 직접 요청한 것이 그 방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행정을 통한 속도가 느린 점을 답답해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충남급 호위함 등 최신예 함정 설계·건조 기술을 갖춘 국가다. 미국 입장에서는 나토 동맹 중에서도 손에 꼽는 해군력과 산업 역량을 보유한 파트너를 통해 해결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망: 법적 장애물과 협의의 중요성
1600조 원대의 미국 함정 시장에 한국이 진출하려면 세 가지 변수가 결정적이다.
법적 개선가 우선이다. 번스-톨레프슨법의 개정이나 대통령 행정명령이 실제로 발동되어야 실질적인 계약으로 이어진다. 현재 상원 군사위원회의 비전투함 허용 법안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미·한 정부 간 실무 협의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 이어 3주 만에 다시 만났으며, 적절한 시기에 방미와 골프 라운딩을 기로 추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실제 건조 조건, 기술 이전, 품질 보증 등 구체적 계약 조건은 이 단계에서 형성된다.
산업 역량의 입증도 지속될 것이다. RFI 다음 단계는 제안 요청(RFP·Request for Proposal)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가격 경쟁력, 납기, 기술 수준에서 미국 기준을 충족하는 제안을 제시해야 계약 가능성이 현실화된다.
결론
현재 한국 조선업의 전투함 건조 기술은 미국의 법적·산업적 제약을 해소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RFI를 통한 기술 조사는 협의의 구체화 신호이지만, 아직 최종 계약까지는 법적 개선과 정부 간 협상이라는 두 개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실무진이 다음 단계를 대비하려면:
- 한국 조선사는 충남급 등 기존 함정 설계안에 대한 기술 문서와 건조 일정표를 정리해두어 RFP 단계 진입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준비할 것
- 정부는 미국의 상원 군사위원회 법안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 협의 시 법적 장애물 해제 일정을 명확히 확인할 것
- 조선 업계는 가격 경쟁력과 해상 성능 검증 데이터를 사전에 확보해 제안 요청 단계에서 신뢰도를 높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