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청계천 소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먼저 일렁였습니다.
2005년 10월 1일에 청계천 복원이 마무리되었으니, 올해 2025년 10월 1일이면 꼭 20년이 됩니다. 뉴스는 청계천이 이제 세계인이 즐겨찾는 '핫플'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반가운 문장을 읽으면서, 동시에 거기 함께 적혀 있던 한 줄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제는 '청계천 없는 서울'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생겼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 전의 풍경 하나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왜 마냥 기쁘지 않았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소식이 처음부터 산뜻하게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뉴스를 천천히 따라 읽다 보면 청계천의 시간이 그대로 펼쳐집니다. 조선 영조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청계천 정비, 일제강점기로 이어진 그 흐름, 그리고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며 천변에 들어선 판자촌까지요.
뉴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건기에는 말랐다가 장마철이면 갑자기 불어나던 청계천변의 판자촌은 위태로웠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누군가에게 그 자리는 그저 낡은 과거가 아니라, 별다른 기반 없이 서울에 올라와 삶의 터전을 처음 닦았던 자리였을 테니까요.
1958년부터 시작된 복개 공사, 1967년 착공된 청계고가도로, 1966년 착공되어 1968년 완공된 세운상가. 뉴스는 이 모든 것을 담담히 적어 내려갑니다. 세운상가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 중 하나로 성장했고, 정부의 문화 검열이 이뤄지던 시절에는 쉽게 접하기 어렵던 외국 음악 음반이 복제본 형태로 청계천에서 유통되었다고 하죠.
주로 불법 복제본이 많았지만, 음악·영화·게임에 이르기까지 서울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갈해주는 데 청계천이 가뭄의 단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가뭄의 단비. 저는 이 비유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도, 단순한 상가도 아니었던 겁니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은, 아마 이런 걱정을 하고 계실 거예요
저처럼 이 소식 앞에서 마냥 웃지 못한 분들이 분명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붙드는 걱정의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닮아 있더군요.
- "내가 알던 그 풍경은 이제 정말 끝난 걸까" —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의 시대를 청계천 상가에서 통과한 분들이 가장 먼저 느끼실 헛헛함입니다.
- "새것이 좋다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서운할까" — 강남과 용산으로 상업 중심지가 옮겨가며 세운상가와 청계천 상가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던 그 시절을 곁에서 본 분들의 마음이죠.
- "이렇게 다 변해버리면, 정말 괜찮을까" — 익숙한 자리가 통째로 바뀌는 걸 지켜보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불안이기도 합니다.
이 걱정들은 결코 유난스러운 게 아닙니다. 2002년 무렵 청계고가도로는 노후화되어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고 뉴스는 적습니다. 변화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마음이 서운한 건, 우리가 그 자리에 무언가를 두고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서운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아끼고 기억한다는 증거니까요.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지점
그래도 저는 이 이야기의 끝이 상실로만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은 위로를 얻습니다.
청계천은 사라진 게 아니라 모습을 바꾸어 여전히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선진국 한국의 수도에 걸맞은 도심 속 자연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도심 속 자연공원이란, 도시 한복판에 자연 하천과 산책로를 되살려 시민이 일상에서 누리도록 만든 공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2005년 10월 1일에 현실이 되었죠.
뉴스의 한 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청계천 복원 덕분에 광화문과 종로를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 일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하게 되었다.
환골탈태.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는 이 말은, 이전의 것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판자촌의 위태로움도, 고가도로의 굉음도, 세운상가의 음악도 모두 한자리에 쌓여 지금의 청계천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옛 청계천의 정취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세계인이 찾는 '핫플' 청계천의 바닥에 켜켜이 깔려 있는 거라고요. 청계천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의 역사 그 자체라는 뉴스의 표현처럼 말입니다.
변화 앞에서 서운한 마음을 다독이는 작은 방법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런 소식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다음의 작은 일들을 해봅니다.
- 직접 한 번 걸어보기: 올해 2025년 10월 1일이면 복원 20주년입니다. 뉴스가 전하는 '핫플'이 된 청계천을, 옛 기억을 품은 채로 천천히 걸어보세요. 사진 속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겹쳐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됩니다.
- 나만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남기기: 세운상가에서 산 음반이든, 천변에서 본 어떤 장면이든, 짧게 적어두는 것만으로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변화의 '이유'를 함께 기억하기: 고가도로의 노후화와 안전 문제처럼, 변화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음을 떠올리면 서운함이 조금은 누그러집니다.
이건 청계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익숙한 동네 가게가 문을 닫을 때, 살던 집이 헐릴 때, 우리는 똑같은 마음을 마주하니까요.
결론
복원 20년 맞은 청계천이 세계인이 즐겨찾는 '핫플'로 거듭났다는 소식은,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양가의 감정을 불러옵니다. 저는 그 서운함이 결코 시대에 뒤처진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핵심을 다시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 2005년 10월 1일 마무리된 청계천 복원은 올해 20년을 맞으며, 광화문·종로 일대의 도심 풍경을 환골탈태시켰습니다.
- 조선 영조 때의 정비, 1958년 복개, 1967년 청계고가도로, 1966~1968년 세운상가에 이르는 시간이 모두 지금의 청계천 아래 쌓여 있습니다.
- 옛 청계천의 정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핫플' 청계천의 토대로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마음이 일렁이는 분께 드리고 싶은 작은 다음 걸음입니다.
- 복원 20주년인 2025년 10월 1일을 전후로 청계천을 직접 걸어보기 — 그리움과 지금의 풍경을 한자리에서 겹쳐보세요.
- 나만의 청계천 기억을 한 문장으로 기록하기 — 기억은 적어두는 순간 사라지지 않습니다.
- 변화가 서운할 땐, 그 변화의 이유까지 함께 떠올리기 — 그것만으로도 '괜찮을까' 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청계천은 모습을 바꾸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고 온 풍경도, 어딘가에서 잘 흐르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