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떡볶이로만 알려진 낡은 골목이 요즘 MZ세대와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는 '힙한 동네'로 변했다니요. 그 배경을 들어보니, 600년을 훨씬 넘는 시간 속에서 신당동이 얼마나 많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신당동: 神·新·Hip'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까닭도 그 때문일 겁니다.

과거의 상처를 품은 자리에서 새로운 것들이 싹트고 있습니다

신당동의 이름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신을 모시는 집'을 뜻하는 '신당(神堂)'이 담긴 이 동네는 조선시대 광희문 밖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신이 도성 밖으로 나가는 통로였던 광희문 근처, 병자를 구휼하던 동활인서가 있던 곳이 지금의 신당도였던 것입니다. 도성 안에 살 수 없던 무당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고, 산 자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의 넋을 달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신당동은 계속해서 시대의 상처를 안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강제 재편, 광복과 6·25로 밀려온 피란민들의 애환. 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서 신당동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1950년대 마복림 할머니가 떡볶이거리를 시작했고, 곡물상들이 모여 싸전거리를 만들었고, 철공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는 골목

요즘 신당동을 걸으면 정말 다릅니다. 떡볶이거리만이 아니라 감성 카페, 소품숍, 디자인 작업실이 골목마다 들어서고 있습니다. 봉제·의류 산업에는 3D와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고 있고요.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외국인 관광객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아시아권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서양권 관광객도 꾸준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칵테일 바에서는 평일 기준 약 40%가 외국인 방문객일 정도입니다. 한국 십이지신을 콘셉트로 한 공간이 서양권 관광객의 관심을 받는 모습은, 신당동이 단순한 '재개발 성공 사례'를 넘어 새로운 문화 거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도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신당동의 변신에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도시는 한 번의 단절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당촌의 영혼이 남아 있고, 피란민들의 삶의 흔적이 있으며, 그 위에 요즘 세대의 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은 지금 어디선가 '낡은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 속에 있습니까? 무당촌에서 힙당동이 되기까지의 신당동 같은 동네, 혹은 사람이 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소중히 품으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당동을 찾아보고 싶으시다면, 떡볶이거리만이 아니라 인근의 칵테일 바, 패션 브랜드, 소품숍 등을 둘러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그곳에는 신당동이 어떻게 시간을 이겨내며 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