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2월부터 가속화된 사전 공표 시점의 전환

공정위(공정거래위원회)가 최종 의사결정 기구인 전원회의 심의가 열리기 전에 담합 사건의 기업 유죄를 마치 확정된 것처럼 언론에 알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2월 밀가루 담합 사건이 분수령이다. 검찰이 2월 2일 "9조원대 밀가루·설탕 담합을 적발했다"고 발표하자, 공정위는 같은 달 20일 심사보고서 상정 시점에 "과징금이 최대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는 전원회의 의결 전 사무처 주도로 예상되는 결과를 미리 공개한 사례다. 이후 전분당, 설탕, 플랫폼 갑질 사건 등에서도 '전원회의에 넘겼다' '조사에 착수했다'는 식의 사전 발표가 이어졌다. 7월 6일 검찰이 정유업계 담합 수사 결과를 공개한 직후 공정위 내부에서는 "또 검찰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평가까지 흘러나왔다.

원인: 물가 총력전과 조사·심판의 '한 지붕' 구조

이재명 대통령이 민생 담합에 초강력 대응을 주문한 이후, 공정위의 조급함이 두드러진다. 검찰이 수사 성과를 대대적으로 브리핑하면서 공정위도 같은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경쟁 심화가 배경에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정위가 조사(검찰 기능)와 심판(법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다. 일반 사법체계에서는 검찰이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공표해도 독립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조사 부서(사무처)가 조단위 과징금을 예고하며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건을 같은 조직 내 심판 부서(위원회)가 뒤집거나 무혐의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전망과 시사점: 공정성 훼손의 악순환 우려

경쟁법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사전 사건 공표를 "준사법기관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보"라고 지적한다. 투명성이라는 명분으로 공정성을 훼손하면, 여론에 따라 의사결정이 내려질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공정위 내에서는 최근 "전원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론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 사전에 결론을 암시하는 브리핑이 이뤄지면, 위원회는 이미 여론의 심판을 받은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는 공정위의 결정 신뢰성을 오히려 낮추는 악순환이 된다. 로펌 관계자의 우려처럼 "법집행 기관이 본래 기능을 잃어가는 중"이라는 평가도 타당하다.

결론

공정위의 사전 공표 관행은 물가 대응이라는 단기 정책 목표와 검찰과의 '경쟁'이 공정성 원칙을 밀어낸 결과다. 준사법기관이 지켜야 할 최대 가치는 공정함인데, 투명성이라는 명분이 그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다음 단계:
- 공정위의 브리핑 정책 재정의 필요 (전원회의 의결 후로의 복귀 검토)
- 조사와 심판 기능 분리의 구조적 개선 논의 추진
- 의사결정 독립성을 지키는 새로운 투명성 기준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