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답답할 때, 우리는 무언가 깊고 진한 위로를 찾게 됩니다. 올여름, 그 위로가 음악과 무대 위에 내려앉으려 합니다. 초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1876년 첫 무대에서 150주년을 맞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잇달아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알려진 두 대작이, 이번엔 다른 메시지를 담고 우리 앞에 섭니다.
비극적 사랑 너머, 전쟁의 아픔을 묻다
1926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투란도트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한 구혼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공주와 그 공주를 사랑해 목숨을 건 왕자의 이야기입니다. 3막에서 왕자 칼라프가 부르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올여름 무대는 그 익숙한 사랑 이야기를 다르게 읽으려 합니다.
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질 이번 공연의 정선영 연출은 "투란도트에는 전쟁에 대한 통탄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기원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라면, 그 말이 얼마나 깊이 와닿는지 알 것입니다. 비극적 사랑이라는 겉껍질 속에 짙게 깔린 '폭력과 복수'의 고리를 오늘날의 전쟁과 갈등이란 문제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죠.
연출은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얻는 이익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또 모른 척 일상으로 돌아오는 '전쟁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이 '전쟁을 멈추자'고 소리 높이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활약한 테너 백석종이 칼라프 역으로 처음 고국의 오페라 무대에 선다는 소식도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는 "한국 관객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세계의 어떤 무대보다 특별하다"고 말했습니다.
150년 역사를 3시간 55분에 담아낸 '바그너 입문서'
다음 달 8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하이라이트 콘서트가 열립니다. 1876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전막 초연된 지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한 공연입니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라인강의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둘러싼 인간과 난쟁이족, 신, 거인족의 싸움과 사랑, 음모를 그렸습니다.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4부작 오페라로, 전막을 다 공연하면 15시간가량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핵심 장면과 주요 독창·중창을 추려 3시간 55분(인터미션 30분 포함)으로 압축한 '바그너 입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장치와 연출을 덜어낸 콘서트 형식으로, 목소리와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집중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는 시간의 제약이 있는 현대인들이 바그너 오페라의 정수를 경험하고, 그 위대함 속에 우리 자신을 담그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올여름, 우리가 오페라를 찾는 이유
'투란도트'와 '니벨룽의 반지'. 두 작품 모두 초연 이후 100년, 150년을 넘겨 지금 우리 앞에 다시 섭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전의 재연이 아닙니다. 각 시대가 그 무대 위에 자신의 상처와 질문을 투영했기 때문입니다.
올여름이 유독 답답하고 무거워 느껴진다면, 이 두 오페라가 당신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질 것 같습니다. 비극의 깊이에서 울어본 사람만이 아는 그 위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는 것은 답이 아니라, 누군가 함께 슬퍼해주는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결론
이번 올여름 오페라의 향연은 단순한 문화생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투란도트(22~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와 니벨룽의 반지 하이라이트 콘서트(8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는 몇 세기를 버틴 음악 속에서 현대의 고통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평화와 위로를 찾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도 괜찮습니다. 그 무게를 안고 무대로 향해보세요. 그곳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수백 년을 이어온 인류의 슬픔과 소망 속에 당신의 마음이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