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식을 읽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1세대 패션모델’ 정소미, 별세…“패션계 ‘철의 여인’”이라는 소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화면을 바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멀게 느껴지는 이름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 시대의 무대를 만든 사람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는 문장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눌렀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국내 1세대 패션모델 겸 패션쇼 연출가인 정소미(본명 정영숙) 더모델즈 대표가 지난 28일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69. 발인은 30일 오전 엄수됐고, 장지는 삼성개발공원묘원 엘리시움입니다.

저는 이런 부고를 읽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숫자로 정리된 한 줄 뒤에는, 사실 한 사람의 평생이 통째로 담겨 있다고요.

한 사람이 만든 무대, 그 기록을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저는 오히려 사실을 차분히 정리해 보는 편입니다. 슬픔이 막연하게 번지지 않도록, 그분이 무엇을 남겼는지 또박또박 짚어보는 거예요.

뉴스에 명시된 고인의 발자취는 이렇습니다.

  • 1982년 패션모델로 데뷔 — 국내 패션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한참 전, 무대 위에 선 1세대 모델입니다.
  • 1999년 연출가로 변신 — 모델에서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기서 잠깐, 패션쇼 연출가란 의상·음악·동선·조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무대 전체를 설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모델 에이전시 ‘더모델즈’를 이끌며 장윤주 등 톱모델들을 발굴했습니다.
  • 앙드레김, 이상봉 등의 패션쇼와 서울패션위크 총괄 연출을 맡아 국내 패션쇼 무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암 투병 중에도 사단법인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를 설립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으나, 최근 병마가 재발해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멈췄습니다. 아픈 몸으로 협회를 세웠다는 문장. 끝까지 자신이 사랑한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확고한 신념과 통찰력으로 패션쇼 무대를 호령하신 분”
“병마 속에서도 패션을 사랑한 패션계의 ‘철의 여인’이었다”

‘철의 여인’. 저는 이 표현이 단단함만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러질 듯 휘청이는 순간에도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만 붙는 이름이라고,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사실 같은 걱정을 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우리의 마음은 비슷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분이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일에서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이렇게 계속해도 괜찮을까.’

투병하는 가족을 곁에서 지키는 분이라면, 재발이라는 단어 하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저, 한 시대의 어른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막연한 상실감과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느꼈을 겁니다.

저는 그 걱정들이 결코 유난스럽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부고 앞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건, 우리가 그만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단단한 지점

그렇다면 이 마음을 어떻게 다독이면 좋을까요. 거창한 답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고인의 발자취에서 우리가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는 단단한 지점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 ‘무대’보다 ‘기틀’을 남긴다는 것 — 뉴스는 그분이 “국내 패션쇼 무대의 기틀을 다졌다”고 적습니다.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딛고 설 바닥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정리해 둔 작은 매뉴얼 한 장, 후배에게 건넨 조언 한마디가 곧 누군가의 기틀이 됩니다.

  • 사람을 ‘발굴’하는 사람의 무게 — 고인은 장윤주 등 톱모델을 발굴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워내는 일은, 화려한 결과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오늘 내 곁의 누군가를 한 번 더 격려해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입니다.

  • 아픈 중에도 멈추지 않은 마음 — 암 투병 중에도 협회를 세운 그 마음을, 우리는 ‘무리하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흔들리던 하루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저는 부고를 슬픔으로만 닫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만든 것이 이렇게 또렷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결론

‘1세대 패션모델’ 정소미, 별세…“패션계 ‘철의 여인’”. 향년 69. 1982년 데뷔해 1999년 연출가로 변신, 더모델즈를 이끌며 서울패션위크를 총괄하고 국내 패션쇼의 기틀을 다진 분입니다. 암 투병 중에도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를 세운 그 단단함이 ‘철의 여인’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이 소식 앞에서 마음이 무거우셨다면, 오늘은 이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 하나, 잠시 멈춰 애도하기. 슬픔을 서둘러 정리하지 마세요. 한 시대를 만든 분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둘, 내가 남기고 있는 ‘기틀’ 한 가지 적어보기.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내 일에서 다음 사람에게 남길 수 있는 것 하나면 됩니다.
  • 셋, 곁의 한 사람을 격려하기. 누군가를 발굴하고 키운 그 마음을,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오늘을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