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백악미술관에서 국제전각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한 가지 생각에 자꾸만 멈춰섰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전각(篆刻)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낯설 수 있습니다. 나무, 돌, 금옥 같은 재료에 인장을 새기는 기법인데, 동아시아에서만 수백 년을 이어온 예술입니다. 마치 손글씨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누군가는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있는 것처럼요.
작은 방寸 안의 큰 세계
지난 15일까지 열린 국제전각전 '방촌(方寸)에 새긴 시대의 기격(氣格)'에는 한중일, 대만, 말레이시아의 전각가 67명이 참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앙미술학원의 왕융 교수를 비롯해 리강톈, 스카이, 왕둥성 같은 거장들이 출품했고, 일본에서도 전각협회 회장인 오자키 소세키를 포함한 주요 작가들이 함께했습니다. 한국, 대만의 전각가들도 각각의 작품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67명의 작가가 지금도 이 기법을 이어가고 있다니요. 혹시 전각이 사라져가는 건 아닐까, 우리 전통이 박물관 속 유물처럼만 남는 건 아닐까 하는 무의식의 걱정이 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인물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것만으로도 생생한 현재를 느낍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움을 찾다
전각 전문 계간지 '印象(인상)'의 최재석 발행인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통을 계승한 작품부터 현대적 조형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전각이 지닌 다양한 미감과 표현 가능성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 말에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이 기계적으로 과거를 반복하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도 어딘가에서 전통은 고정된 것,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배운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전각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옛 기법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누군가는 그 위에 새로운 생각을 얹어 냅니다.
같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전통을 좋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 마음, 변화를 원하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 비슷한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한국에서 처음 맞이한 순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 전각만을 주제로 이 정도 규모의 국제 전시가 열리는 것이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67명의 동아시아 작가, 4개국 이상의 전각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생각해봅니다.
전통이 사라져간다고만 생각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깁니다. 오히려 이렇게 국제적으로 함께 모여 서로의 작품을 보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작은 방寸 안에 각 시대의 정신이 담긴다면, 지금 이 순간 그 방寸들이 태평양을 넘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과거를 그대로 모사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마음. 백악미술관의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을 느껴볼 수 있을 겁니다. 인장 하나하나에 담긴 67명의 시대 정신을 말입니다.
결론
한 작가의 이름 하나하나가 전통이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동아시아 전각의 아름다움은 박물관 안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름다움을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
- 백악미술관이나 가까운 전각 전시를 찾아 직접 방문해봅니다.
- 전각 기법에 대해 알아보거나, 관심 있다면 초급 강좌를 살펴봅니다.
- 우리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는 다른 전통 예술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