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법의 공백을 파고드는 암거래

경구용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이 국내에서 무허가 상태로 암거래되고 있다. 뉴스에 따르면 임신 7주 이전은 한 알에 35만원, 7~12주는 55만원에 불법 거래되고 있으며,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텔레그램 계정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국제 가격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의료계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에서 품질이 보장된 미프진의 중위 가격은 1만2000원 수준이고, 약값이 비싼 미국도 80달러(약 12만원) 정도다. 국내 암거래 가격은 해외 정상가의 3배에서 4배대인 셈이다.

원인: 5년의 제도 공백이 만든 시장 왜곡

미프진의 국내 허가 지연이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현대약품이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인터내셔널로부터 국내 판권을 받은 것은 2021년이었고, 같은 해 12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식약처의 자료 보완 요청을 받다가 결국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이 배경에는 더 근본적인 법적 공백이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임신중지의 허용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대체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의료 현장에서는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임신중지를 다뤄야 하는지 여전히 불명확하다.

전망: 대통령 발언이 신호하는 정책 변화의 가능성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 때문이다. 14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낙태 허용 범위 논쟁이 안 끝나면서 미프진을 허용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으로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복용해 사고가 난다"며 "이렇게 방치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는 정책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성명을 통해 "의약품 도입을 통해 임신중지가 처벌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개발된 지 40년 가까이 된 임신중지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 현장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최안나 부이사장은 "약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임신 초기에만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임신 전 기간에 걸친 중지를 허용할 순 없으니 기준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 제도 기준 마련이 도입의 관건

미프진의 국내 도입은 약물의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정부의 정책 신호가 나왔지만, 실제 도입을 위해서는 임신중지 허용 기준과 의료 절차를 법적으로 명확히 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암거래를 통한 품질 미보장 약물 사용의 위험을 줄이려면:

  • 대체입법 마련을 통한 제도적 기반 확립
  • 임신 초기 기준 등 의료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 수립
  • 약물 도입 시 정상 가격대 형성으로 불법 유통 억제

이들 조건이 하나씩 정비될 때, 암거래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의료 체계 내 관리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