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마을을 걷다 보면 누군가의 떠남이 보입니다. 빈 상가, 닫힌 문, 자취가 남은 골목. 저는 그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자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부여의 규암면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 공예가 들어오다

규암면은 한때 백제 문화가 짙게 배어 있던 곳입니다. 나루터와 오일장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이곳은 1960년대 백제교가 놓이면서 생활권이 이동했고, 결국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빈집과 빈 상가가 늘어가던 마을에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젊은 공예가와 기획자들이 하나둘 들어왔습니다. 오래된 벽과 들보를 품은 공방들이 문을 열고, 책방과 카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여군이 이 흐름에 힘을 실었고, 123사비공예마을이 조성됐습니다. 부여는 쇠퇴와 재생이 한 풍경 안에 공존하는 마을이 됐습니다.

공예주간에서 본 부여의 태도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2026 공예주간에서 저는 흥미로운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했으며, 전국 5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부여는 그 거점도시였습니다.

특히 눈에 띈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제철을 짓는 공예 런케이션'은 공예와 숙박, 지역문화를 결합한 체류형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런케이션(런 + 베케이션)에 머물며 정원을 걷고 공예를 배웠습니다.

정원과 공예는 겉으로는 다르지만, 따져보면 닮아 있습니다. 손을 쓰고, 재료의 성질을 살피며, 기다려야 합니다. 둘 다에는 제철이 있습니다.

손으로 느끼는 위로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 금동대향로 전시 공간(지난해 12월 개장)은 한 점의 유물에 집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궁남지의 연꽃을 본 뒤 이곳에 들어서니, 그 유물이 부여의 자연과 신화를 품은 작은 우주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체험은 지역 공예가와 함께 이끼볼을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흙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둥근 형태를 다듬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 하나하나가 가만히 나를 정돈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래된 것을 밀어내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조심스럽게 얹는 부여의 태도. 그것이 우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도 갈 수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곳을 바라보며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떠난 사람들의 자리가 정말 다시 살아날까, 우리 지역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부여의 규암면은 그 질문에 작지만 단단한 답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골목을 지우지 않으면서, 그 위에 공예와 정원이라는 문화를 살짝 얹는 방식이었습니다.

혹시 당신의 마을도 변하길 바란다면, 먼저 방문해 보세요. 규암면의 공방을 둘러보고, 이끼볼을 만들어 보세요. 손으로 무언가를 다듬을 때 느껴지는 것들이, 당신이 원하던 답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