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하루의 끝에 위스키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 작은 호박색 잔 속에 들어 있는 건 단순한 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랜 시간과 땅의 이야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위스키와 코냑이 또다시 세계 무역전쟁의 표적이 됐다는 소식을 봤을 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한 잔이, 왜 자꾸 나라와 나라 사이 싸움의 한가운데에 서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30일(현지 시간) 스카치위스키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나흘간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귀국길에 오른 찰스 3세 영국 국왕에게 건넨 뜻밖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저는 오히려 묻게 됐습니다. 왜 위스키와 코냑은 매번 협상 테이블 위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카드가 되는 걸까요.

왜 하필 위스키·코냑이 무역전쟁의 단골 표적이 될까

저처럼 술 한 잔에 위로받는 분이라면, 이 질문이 남 일 같지 않으실 거예요.

참고 뉴스가 짚어 주는 이유는 의외로 명확합니다.

미국 켄터키주의 버번위스키,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 프랑스의 코냑은 모두 지역 경제와 문화적 정체성이 깊이 결합된 상징재다.

여기서 상징재(象徵財)란, 그 지역의 경제와 자존심을 동시에 짊어진 상품을 뜻합니다. 이런 술에 관세를 부과하면 해당 지역 정치인들에게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뉴스는 설명합니다. 무역협상의 레버리지(협상에서 상대를 움직이는 지렛대) 카드로 이보다 효과적인 것을 찾기 어렵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비슷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가장 아끼는 것을 건드리면 가장 빨리 반응하잖아요. 나라들도 그렇게 서로의 '가장 아끼는 한 잔'을 쥐고 흔드는 셈입니다.

스카치위스키가 견뎌 온 수난의 시간

저는 이 대목에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습니다. 위스키가 이런 일을 겪은 게 처음이 아니거든요.

뉴스가 들려주는 스카치위스키의 미국 수난사는 이렇습니다.

  • 1920년 금주법: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됐지만, 밀주 루트를 통해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 1933년 금주법 폐지: 이전보다 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춘 채 시장에 돌아왔고, 1930년대 후반 미국은 스카치위스키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습니다.
  • 19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 대공황 속에서 미국이 수입품에 평균 59% 관세를 매겼고, 각국의 보복 관세가 이어지며 세계 교역 규모가 60% 이상 감소했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선에서 귀환한 미군들이 다시 위스키 시장을 키웠습니다.
  • 2004년 보잉-에어버스 분쟁: 2019년 WTO가 미국 손을 들어주며, 트럼프 1기 정부가 스카치위스키에 25%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트럼프 관세를 두고 "스무트 홀리 이후 10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긴 목록을 보면서 저는 묘한 위안을 느꼈습니다. 위스키는 금주법도, 대공황도, 전쟁도 다 통과해 지금 제 잔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요.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

물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저와 비슷하게 이 한 잔에 마음을 기대는 분들, 혹은 관련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거예요.

'내가 즐기던 그 위스키, 이제 가격이 또 오르는 거 아닐까. 정말 괜찮을까.'

숫자는 이 걱정이 막연한 게 아님을 보여 줍니다. 스카치위스키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카치위스키 수출액은 54억 파운드(약 11조 원)로, 스코틀랜드 전체 식음료 수출의 77%를 차지합니다. 영국 경제에는 연간 71억 파운드(약 14조3000억 원)의 부가가치와 6만6000개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고 해요.

그런데 지난해 관세 부과 이후 약 10개월 동안 대미 수출이 약 15% 감소했고, 위스키 업계는 주당 400만 파운드(약 81억 원)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이 숫자들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증류소에서 일하는 분, 오크통을 관리하는 분, 그 한 잔을 우리에게 건네는 분. 그래서 이 걱정은 그저 한 병의 가격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와 자부심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안 앞에서 무엇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첫째, 표적이 된다는 건 그만큼 사랑받는다는 뜻입니다. 협상 카드로 쓰인다는 건, 위스키와 코냑이 그저 사라져도 되는 상품이 아니라 한 지역의 심장 같은 존재라는 증거예요. 아무도 아끼지 않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둘째, 역사가 회복을 증언합니다. 금주법 시절 밀주 루트에서 오히려 희소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었고, 전쟁 후엔 귀환한 군인들이 시장을 다시 키웠습니다. 위스키는 늘 위기를 통과한 뒤 더 단단해진 채 돌아왔습니다.

셋째, 지금은 빗장이 풀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30일 스카치위스키 관세 철폐 의사를 밝힌 건,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결론: 한 잔의 위로를 지키는 우리의 작은 실천

정리하면, 위스키·코냑이 세계 무역전쟁의 단골 표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지역 경제와 문화 정체성이 결합된 상징재이고, 정치인을 즉각 압박할 수 있는 협상 레버리지이기 때문입니다. 스카치위스키는 금주법, 스무트 홀리 관세, 보잉-에어버스 분쟁을 모두 견뎌 왔고, 지금은 관세 철폐 논의가 나오는 국면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이 소식을 지켜보는 분들께 작은 다음 단계를 권하고 싶어요.

  • 숫자보다 흐름을 보기: 관세 철폐 '발표'와 실제 '시행'은 다를 수 있으니, 한 번의 뉴스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협상 흐름을 차분히 따라가 보세요.
  • 지금의 한 잔을 더 정성껏 음미하기: 가격이 출렁일 때일수록, 이미 내 곁에 있는 한 병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거예요. 그 술이 통과해 온 역사를 알면 한 모금이 달라집니다.
  • 걱정을 혼자 삼키지 않기: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이 소식을 나눠 보세요. '괜찮을까'라는 물음은 함께 나눌 때 한결 가벼워집니다.

저는 오늘도 잔을 다시 들었습니다. 세상은 자꾸 이 호박색 한 잔을 흔들지만, 그 흔들림을 견디며 우리 앞에 와 준 술이라는 걸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의 한 잔도, 부디 오래 따뜻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