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아침, 한 줄짜리 소식을 보고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스무 살 첼리스트 김태연 씨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붙잡은 건 ‘2위’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가 남긴 한마디였습니다.

“너무 기쁘다. 마지막 순서로 연주하게 돼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그 덕에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순서. 보통 우리는 ‘마지막’을 불리한 자리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를 ‘감사한 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왜 마음이 일렁였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클래식 전문가가 아닙니다. 첼로 협주곡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식이 오래 남았던 이유는, 김태연 씨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그는 이번 결선 12명의 연주자 중 최연소 참가자였습니다. 우승은 이탈리아 첼리스트 에토레 파가노(23) 씨에게 돌아갔고, 김 씨는 두 번째로 호명됐습니다. 3위는 미국 출생 캐나다인 릴런드 코(28) 씨였습니다.

스무 살. 가장 어린 나이로,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 중 하나에서 2위에 오른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아쉽게 1위를 놓쳤다’는 마음에 먼저 사로잡혔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서’라는 조건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덕분에 받은 기립박수를 기뻐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어떤 걱정을 안고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지금 ‘내 차례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 동기들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
  • 한참을 준비했는데 1등이 아니라 2등, 혹은 그조차 닿지 못했을 때
  • 가장 어린 사람도, 가장 늦은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을 때

저는 그런 마음을 잘 압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질문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밤마다 조용히 되뇌는 말이니까요.

특히 ‘마지막 순서’ 같은 상황은 더 그렇습니다. 늦게 시작했다는 이유로, 순번이 뒤라는 이유로, 우리는 미리 불안해집니다. ‘앞사람들이 다 잘하면 내 차례엔 이미 분위기가 식어 있겠지’ 하고요.

그런데 김태연 씨의 말은 그 통념을 부드럽게 뒤집습니다. 마지막 순서였기에, 객석의 마음이 끝까지 모였고, 그래서 기립박수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객석을 향해 인사를 10번은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늦은 자리가,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자리가 된 셈입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여기서 저는 우리가 함께 붙잡을 만한 지점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위로가 막연한 말로 끝나지 않으려면, 손에 잡히는 사실도 함께 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첫째, ‘순서’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김 씨는 마지막이라는 조건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스스로 정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 차례가 언제 오는지는 통제할 수 없어도, 그 차례를 ‘원망’으로 맞을지 ‘감사’로 맞을지는 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 ‘끝까지 남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번 결선은 12명이 겨뤘고, 김 씨는 그중 가장 어렸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순서가 늦다는 것은 약점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는 ‘여운’이라는 보상이 남습니다. 늦게 핀 꽃이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합니다.

셋째, ‘준우승’도 충분히 빛나는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37년 창설된, 만 18세부터 30세 이하의 젊은 음악가를 대상으로 매년 열리는 대회입니다. 첼로·바이올린·피아노·성악 네 부문이 번갈아 열리며,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로 꼽힙니다.

그런 무대에서 스무 살의 나이로 2위에 오른 것입니다. ‘1위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단단한 디딤돌입니다.

‘1위만 기억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닌 이유

우리는 흔히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식을 보며 그 말이 꼭 맞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제가, 그리고 많은 분들이 마음에 담은 건 우승자의 이름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라 감사했다’고 말한 준우승자의 태도였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이번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는 한국인 입상자가 연이어 배출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 씨는 결선에서 중국계 미국 작곡가 팡만의 현대음악 ‘꽃 소식에 대한 네 편의 송가’와, 20세기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쉽지 않은 곡, 어린 나이, 마지막 순서. 불리해 보이는 조건들이 겹쳤지만, 그는 그 모두를 ‘감사’라는 한 단어 안에 담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대하는 마음이 결국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걸 다시 배웠습니다.

결론: 늦은 순서에 서 있는 당신에게

오늘 우리가 함께 본 것은 한 첼리스트의 준우승 소식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에게 닿는 위로가 있었습니다.

핵심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 김태연 씨(20)는 5월 31일 벨기에 브뤼셀 시상식에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준우승으로 호명됐습니다.
  • 그는 결선 12명 중 최연소 참가자였고, ‘마지막 순서’를 불리함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였습니다.
  • ‘늦은 자리’가 오히려 기립박수라는 가장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 차례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 순서에도, 박수는 옵니다.

오늘 당장 붙잡아 보면 좋을 작은 행동 세 가지를 남겨 둡니다.

  • 하나, 오늘 내 ‘순서’ 중 바꿀 수 없는 것과 정할 수 있는 ‘태도’를 종이에 한 줄씩 적어 보십시오.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마음을 떼는 첫걸음이 됩니다.
  • 둘, 최근 내가 ‘2등이라 아쉬웠던 일’ 하나를 떠올리고, 거기서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 하나를 다시 칭찬해 주십시오.
  • 셋, 늦었다고 느껴지는 일 하나를 미루지 말고, 오늘 가장 작은 한 걸음만 시작해 보십시오. 마지막 순서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오늘 이미 보았으니까요.

저는 김태연 씨의 다음 무대를, 그리고 지금 늦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당신의 무대를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