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가슴 한쪽이 조용히 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수학여행 때 무심히 지나쳤던 그 작은 돌탑, 첨성대가 사실은 “은하수왕이 내려온 신궁”이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오늘 저는 그 이야기를 천천히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옛날 옛적 신라 이야기겠지만, 저에게는 잊혀 가는 것들을 끝까지 붙드는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거든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첨성대를 그냥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정도로만 외우고 살았거든요. 그 돌 하나하나에 신라 사람들의 우주관이 새겨져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님은 다르게 보셨더군요. 올해 62세, 민속학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기록된 유명의 역사 뒤를 받쳐 온 무명의 역사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빌린 이 말씀 앞에서,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기록되지 못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시간들. 그 ‘무명의 역사’를 굳이 끄집어내려고 무려 15년을 매달린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첨성대가 정말 ‘은하수왕의 신궁’일 수 있을까요
뉴스에 따르면 김 교수님은 ‘삼국사기’를 ‘역사자연학’이라는 분석 틀로 다시 읽어, 연구서 ‘삼국사기 자연학’ 1∼7권(한중연 출판부)을 최근 발간하셨습니다.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나요. 200자 원고지로 1만6400장입니다. 2011년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인문학)에 선정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한 연구가, 15년 만에 이렇게 거대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 성한왕(星漢王): 여러 비석에 기록된, 당대 신라인이 ‘태조’로 여긴 인물. 김 교수님은 이를 ‘은하수왕’이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 문무왕릉비(682년): 15대조이며 별들의 왕인 은하수왕이 하늘에 천궁을, 땅에 선악(仙岳)을 만들고 선령으로 내려와 나라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 15대조 = 미추왕: 김씨 왕력으로 환산하면 첫 김씨 왕인 미추왕에 닿습니다. 김씨가 왕을 세습하면서 미추왕을 시조로 하는 ‘제2의 건국 신화’가 생겨났다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첨성대가 등장합니다.
은하수는 ‘별의 물’입니다. 물이 하늘에서 흘러내리려면 통로가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첨성대는 맨 위가 ‘井’(우물 정) 모양일 뿐 아니라, 호리호리한 형태가 영락없이 우물을 닮았습니다.
“첨성대에서 ‘하늘 우물’ 신화가 재현됐던 것입니다.”
김 교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첨성대가 바로 신궁”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경주 나정(蘿井)을 신궁으로 보는 통설과는 다른 견해입니다.
근거도 있습니다. 김씨 성역은 반월성에서 미추왕릉에 이르는 공간으로, 나정에서 오릉에 이르는 박씨 성역과 구분되는데, 그 김씨 성역의 정중앙에 첨성대가 있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옛날 이야기가, 지금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분명 계실 겁니다. 저도 한때 그랬으니까요.
또 어떤 분은 이렇게 걱정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새로운 해석이 나오면, 우리가 배운 건 다 틀린 게 되는 걸까. 괜찮을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김 교수님의 태도에서 저는 오히려 안심을 얻었습니다. 그는 신화를 무조건 사실로 우기지 않습니다.
“알에서 태어났다? 사실 검증 못 해… 실증을 넘어 ‘경험주의 역사학’이 필요합니다.”
검증할 수 없는 건 검증할 수 없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도 옛사람의 ‘경험’과 ‘믿음’ 그 자체를 역사로 끌어안으려는 태도. 저는 이 균형 잡힌 자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위로라고 느꼈습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단단한 지점은 어디일까요
저는 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새로운 해석은 과거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더 두껍게 만드는 일입니다.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하늘 우물’ 신화가 재현됐다는 해석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층층이 쌓일 뿐입니다.
둘째, 15년이라는 시간입니다. 원고지 1만6400장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붙들고 묵묵히 가고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증거를 김 교수님이 대신 보여주신 셈입니다.
셋째, 이름 없는 것을 기억하려는 마음입니다. ‘무명의 역사’를 담고 싶었다는 그 말. 저는 이 문장을, 오늘 인정받지 못해 서운한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읽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첨성대를 둘러싼 한 학자의 15년 집념을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김일권 교수님은 487년 소지왕의 신궁 창립을 기점으로 신라 천년을 시조묘 시대와 신궁 시대로 나누고, 문무왕릉비(682년) 속 은하수왕을 첫 김씨 왕 미추왕과 연결해 첨성대를 ‘하늘 우물’ 신궁으로 풀어냈습니다. 그 결실이 ‘삼국사기 자연학’ 1∼7권입니다.
마음이 복잡하셨던 분들께, 바로 해볼 수 있는 세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 첨성대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 ‘井’ 자 모양 윗부분과 우물 같은 곡선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같은 돌이 전혀 다르게 보일 겁니다.
- ‘삼국사기 자연학’이라는 키워드 기억해 두기: 깊이 알고 싶어질 때, 1∼7권이라는 방대한 1차 해설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내가 붙들고 있는 ‘무명의 시간’ 떠올리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어가는 나만의 15년이 있다면,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한번 다독여 주세요.
저는 믿습니다. 이름 없이 흘러온 시간도 언젠가는 별의 물처럼, 우리에게로 조용히 흘러내린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