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식을 늦은 밤에 처음 봤습니다.

스무 살 첼리스트가 ‘세계 3대’ 콩쿠르 무대에서 두 번째로 호명되는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제 마음 한쪽이 먼저 따뜻해졌습니다. 우승이 아니라 준우승이라는 단어 앞에서, 누군가는 분명 ‘괜찮을까’ 하고 잠시 멈칫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늘은 그 멈칫함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준우승’이라는 말에 먼저 안도했습니다.

첼리스트 김태연 씨(20)는 31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 공연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자인 이탈리아 첼리스트 에토레 파가노(23)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되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번 콩쿠르 결선에 오른 12명의 연주자 가운데 최연소 참가자였습니다. 가장 어린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 바로 옆에 섰다는 사실. 저는 이 한 줄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김 씨 본인의 말도 그랬습니다. 그는 수상 직후 현지 공영방송 RTBF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기쁘다. 마지막 순서로 연주하게 돼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그 덕에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객석을 향해 인사를 10번은 한 것 같다.”

‘아쉽다’가 아니라 ‘감사하다’로 시작하는 소감이었습니다. 저는 그 첫 단어에서, 우리가 흔히 결과 앞에서 잃어버리곤 하는 마음 하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어떤 걱정을 안고 있을까요

이 소식을 ‘남의 일’로만 읽기 어려운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오래 준비한 시험에서 1등이 아니라 2등을 한 사람. 최종 면접에서 마지막 한 사람에게 밀린 사람. 발표 무대에서 마지막 순서로 올라가 떨리는 손을 숨겼던 사람.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비슷한 걱정을 합니다.

  •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
  • “가장 어린데, 가장 늦게 시작했는데,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
  • “1등이 아니면 사람들이 기억해 줄까” 하는 인정에 대한 불안

저도 그랬습니다. 결과가 ‘최고’가 아닐 때, 그동안의 시간 전체가 깎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는 한마디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식 앞에서, 위로가 필요한 분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저는 이번 결과에서 ‘위로’를 찾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막연한 기분이 아니라, 뉴스 속 사실들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어떤 무대였는지가 결과의 무게를 말해 줍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37년 창설된 대회로, 18세부터 만 30세 이하의 젊은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열립니다.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의 4개 부문이 번갈아 가며 개최됩니다.

그리고 이 대회는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로 꼽힙니다.

저는 여기서 멈춰 생각합니다. 이런 무대의 ‘2위’는, 다른 어떤 자리의 1위보다 좁은 문을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을요. 결선에 오른 12명 중 최연소로서 두 번째 자리에 섰다는 건, 숫자 ‘2’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일입니다.

둘째,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힘

이번 결과를 두고 ‘3년 만에 또 한번 K클래식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뉴스에 따르면 한국과 이 대회의 인연은 깊습니다.

  • 2023년 성악 부문에서 바리톤 김태한 씨가 우승
  • 첼로 부문에서는 2022년 최하영 씨가 1위
  • 성악 부문 소프라노 홍혜란 씨(2011년), 황수미 씨(2014년)
  • 바이올린 부문 임지영 씨(2015년)
  • 작곡 부문 조은화(2008년), 전민재(2009년) 씨

이름들을 가만히 읽다 보면, 한 사람의 결과가 외딴 점이 아니라 긴 흐름 속의 한 마디라는 게 느껴집니다. 김태연 씨의 이번 준우승은, 최하영 씨에 이어 첼로 부문에서 연이어 나온 한국인 입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나만 뒤처진 것 같다’고 느낄 때, 사실은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 저는 이 대목이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셋째, ‘무엇을 골랐는가’가 ‘몇 등인가’보다 오래 남습니다

최연소 참가자였던 김 씨가 결선에서 고른 곡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중국계 미국 작곡가 팡만의 현대음악 ‘꽃 소식에 대한 네 편의 송가(Four Odes to the Tidings of Flowers)’와, 20세기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쉬운 길 대신 까다로운 현대 레퍼토리를 택한 선택.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실용적인 힌트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1등이 아닐까 봐 ‘무난한 선택’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정작 사람들 마음에 오래 남는 건 ‘그 사람이 무엇에 도전했는가’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면 좋을까요

저는 이 소식을 ‘남의 영예’가 아니라 ‘나를 다독이는 거울’로 읽고 싶습니다. 멀리 있는 무대처럼 보여도, 거기서 우리가 실제로 가져올 수 있는 태도가 있다고 믿습니다.

  • 결과를 ‘감사’로 먼저 받기: 1등 옆자리도,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시간 전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 비교 대상을 ‘어제의 나’로 좁히기: 12명 중 최연소처럼, 출발점이 다르면 같은 자에 올려놓고 잴 수 없습니다.
  • 무난함보다 ‘내가 고른 곡’을 남기기: 안전한 선택보다 진심으로 택한 도전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결론

오늘 저는, 첼리스트 김태연 씨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준우승 소식을 통해 ‘괜찮을까’라는 걱정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봤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그는 ‘세계 3대’로 꼽히는 1937년 창설 콩쿠르의 첼로 부문 결선 12명 중 최연소로서, 우승자 에토레 파가노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되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최하영 씨에 이은 한국 첼로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2위’라는 단어 앞에서 작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해볼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제안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 결과를 적기 전에 ‘감사할 점’ 한 줄 먼저 적기: 김 씨의 “감사하다”는 첫마디처럼, 오늘의 결과에서 고마운 한 가지를 먼저 찾아봅니다.
  • 나만의 ‘도전 레퍼토리’ 한 가지 정하기: 무난한 선택 대신, 올해 진심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을 한 줄로 적어 둡니다.
  • 같은 길을 먼저 간 사람 떠올리기: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비슷한 자리에서 버텨낸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도 그 흐름 안에 있다’고 되뇌어 봅니다.

준우승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했던 우리 모두에게, 오늘 이 소식이 조용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