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 소식을 화면으로 처음 마주했을 때, 잠깐 숨을 멈췄습니다.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망보다 먼저 찾아온 건 어떤 따뜻한 안쓰러움이었습니다. 멀리서 응원하던 마음이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느낌이랄까요.

오늘은 그 마음에 대해, 그리고 비슷한 자리에서 마음 졸이고 있을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뉴스에 따르면, 미국의 권위 있는 SF·판타지 문학상인 로커스상에서 올해 신설된 번역 소설 부문 수상자로 덴마크 작가 솔베이 밸라(Solvej Balle)가 선정됐습니다.

수상작은 그의 연작 소설 '온 더 캘큘레이션 오브 볼륨 III'(소피아 헤르시 스미스·제니퍼 러셀 옮김)입니다. 시상식은 30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 쓰던 대목.

한국은 정보라의 작품 2편, 천선란과 김성일의 작품 각각 1편이 10편의 후보에 포함돼 기대를 모았으나, 수상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용어를 짚자면, 로커스상은 1971년 미국 SF 전문지 '로커스'의 설립자 찰스 N. 브라운이 만든 상으로, 네뷸러상·휴고상·필립 K. 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입니다. 특별한 점은 독자들이 직접 설문조사로 수상작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결정되는 상인 셈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건 아쉬워만 할 일일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멈춰 섰습니다.

수상은 불발됐지만, 올해 신설된 번역 소설 부문 10편의 후보작 중 4편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후보의 거의 절반입니다.

숫자를 천천히 다시 읽어 봅니다.

  • 후보작 전체: 10편
  • 그중 한국 작가 작품: 4편 (정보라 2편, 천선란 1편, 김성일 1편)

이건 '운이 좋아 한 자리 끼었다'와는 다른 무게의 숫자입니다. 전 세계 SF 문학계가 한 부문을 새로 열었는데, 그 첫 명단의 절반 가까이를 한국 작가가 채웠습니다. 뉴스도 "전 세계 SF 문학계에서 한국 작가와 작품의 존재감을 남겼다"는 평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도착의 기록으로 읽고 싶습니다.

비슷한 자리에 선 우리는, 무엇이 걱정일까

이 소식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우리도 저마다의 '후보 명단'에 올라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 면접의 최종 단계까지 갔지만 마지막에서 미끄러진 날
  • 공모전 본선에 올랐는데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없던 순간
  • 열심히 준비한 발표가, 결정권자의 마음을 끝내 다 움직이지 못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면, 나는 괜찮을까. 다음엔 될까. 이 방향이 맞긴 한 걸까.

저도 그 질문 앞에서 오래 서성여 봤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그 걱정은 게으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걱정이라는 걸요.

후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 자리를 아쉬워할 수 없습니다. 아쉬움은, 닿을 뻔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감정입니다.

그 걱정 속에서, 단단하게 붙잡을 지점

위로가 막연한 말이 되지 않으려면, 발 디딜 사실이 필요합니다. 이번 소식이 우리에게 건네는 단단한 지점은 이렇습니다.

첫째,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이미 통과한 관문입니다.
10편의 명단에 4편이 들었다는 건, 결과 이전에 '실력'이 먼저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트로피는 한 번의 결과지만, 후보 명단은 오래 쌓인 증거입니다.

둘째, 이 상은 독자의 마음이 모여 결정됩니다.
로커스상은 독자 투표로 수상작을 뽑습니다. 한 해의 결과가 곧 작품의 절대적 우열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해마다 모이는 방향이 다릅니다. 올해의 한 표가 영원한 평가는 아닙니다.

셋째, 길은 이미 열린 적이 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2017년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하가 '나인폭스 갬빗'으로 최우수 장편 부문상을 받았습니다. 이 무대에서 한국과 닿은 이름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문은 닫혀 있는 게 아니라, 이미 한 번 열린 적 있는 문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결과는 끝이 아니라,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점점 당연해지는 흐름의 한 장면입니다.

실망을 오래 두지 않는, 작은 실천법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도 방법이 있더군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 결과와 과정을 분리해 적어 보기: 종이를 반으로 나눠, 한쪽엔 '바꿀 수 없던 결과', 다른 쪽엔 '내가 해낸 과정'을 적습니다. 후보 4편이라는 사실처럼, 과정의 칸은 생각보다 길게 채워집니다.
  • '아직'이라는 단어 붙이기: '안 됐다'를 '아직 안 됐다'로 바꿔 말하면, 닫힌 문장이 열린 문장이 됩니다.
  • 하루만 충분히 아쉬워하기: 감정에 마감일을 정해 줍니다. 오늘은 마음껏 아쉬워하고, 내일은 다음 후보 명단을 준비하는 손으로 돌아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韓 작가의 2026 로커스상 수상 불발과 솔베이 밸라의 수상 소식을 함께 바라봤습니다.

핵심만 다시 모으면 이렇습니다.

  • 신설된 번역 소설 부문 첫 수상작은 솔베이 밸라의 '온 더 캘큘레이션 오브 볼륨 III'입니다.
  • 한국은 후보 10편 중 4편(정보라 2편, 천선란·김성일 각 1편)을 올렸고, 수상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그 4편이라는 숫자는, 결과 이전에 실력이 먼저 인정받았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식을 '괜찮을까'라는 질문으로만 닫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비슷한 자리에서 마음 졸이는 당신께,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일을 권합니다.

  • 결과 칸과 과정 칸을 나눠 적어 보기 — 내가 통과한 관문이 의외로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합니다.
  • '안 됐다'를 '아직 안 됐다'로 고쳐 말하기 — 한 단어가 마음의 방향을 바꿉니다.
  • 다음 '후보 명단'에 다시 이름을 올릴 준비를 오늘 하나만 시작하기 — 문은 이미 열린 적 있고, 우리는 이미 그 앞까지 와 있습니다.

수상은 한 번의 결과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계속됩니다. 저는 그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