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저는 미술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런데 '김홍도 그린 금강산 사생 초본 10점 나왔다…해동명산도첩 계열'이라는 소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습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가 1788년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밑그림으로 추정되는 화첩 10점. 그동안 존재만 알려져 있던 그림이, 오늘에야 실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것이 다시 돌아오는 일. 그건 그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은, 아마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 소식을 함께 읽는 분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게 진짜 김홍도 작품이 맞을까, 괜찮을까?"
솔직한 걱정입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도 "해당 작품은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며 "현재로서는 작품을 직접 확인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진위와 계열 관계는 전문가들의 추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무언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와도, 혹시 헛된 기대는 아닐까 먼저 한 발 물러서게 되는 마음.
그래도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이 있습니다
검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발견의 가치를 지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여기서 작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번 화첩은 조선 마지막 어진화가로 알려진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아들 김성원 씨가 소장해온 것입니다. 한 집안이 오래 간직해온 그림이, 시간을 건너 세상과 만난 셈이지요.
미술평론가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렇게 짚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해동명산도첩은 원래 약 60점 규모로 전해진다. 이번에 공개된 10점은 그동안 존재만 알려졌던 같은 세트의 일부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이 1997년 미국에 거주하던 김세원 씨로부터 구입한 32점에, 이번 10점을 더하면 원래 화첩의 상당 부분이 드러난 셈입니다. 이 평론가는 "구도가 상당 부분 일치해 초본과 완성본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며 "현장에서 직접 사생한 원형에 가까운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흩어졌던 조각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사실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결론: 사라진 것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확인된 김홍도 금강산 사생 초본 10점은, 비록 진위 검증이라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지만 그 자체로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건넵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비슷한 걱정을 안고 계신 분들께, 오늘 이렇게 권해보고 싶습니다.
- 숫자를 천천히 기억해두기: 박물관 소장 32점에 이번 10점, 그리고 약 60점 규모로 전해지는 원래 화첩. 추가 발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상태이니, 앞으로의 소식을 조급함 없이 지켜봐도 괜찮습니다.
- '아직 확인 중'을 불안이 아닌 여백으로 받아들이기: 검증이 남았다는 말은, 더 깊이 알아갈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내 곁의 사라진 것들을 한 번 떠올려보기: 한 집안이 오래 간직한 그림이 돌아왔듯, 우리가 놓아버린 것들도 끝난 게 아닐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조금 위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