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가 내건 ‘기술의 인류 구원’ 서사는 단순한 철학 논쟁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배분 문제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 애덤 베커의 신간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박주용 옮김·동아시아·496쪽·2만2000원)은 이 서사를 정면으로 해부한다. 본 글은 이 책의 논지를 거시·시장의 흐름 속에서 차분히 짚는다.
현황: ‘특이점’ 서사가 시장 한복판에 서 있다
베커가 겨냥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무시한 명단에 샘 올트먼,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등 글로벌 기술기업 수장들이 올라 있다. 이들은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는 인물들이다.
핵심 개념은 특이점(singularity)이다. 본래 블랙홀처럼 기존 이론으로 정의할 수 없는 지점을 뜻하지만, 오늘날은 인공일반지능(AGI)의 등장 같은 혁명적 기술 진보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책에 따르면 일부는 초지능 AI가 유토피아를 부르고 모든 결핍을 없애며 불로장생·영생을 가능케 할 것이라 믿는다. 이른바 ‘영생 산업’이 이 믿음 위에 서 있다.
원인: 왜 ‘공상적 비전’이 자본을 끌어모으나
베커는 이 믿음을 ‘공상적 비전’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위험하다고 본다. 경제 애널리스트의 관점에서 그가 짚는 원인은 세 가지 구조적 요인으로 정리된다.
- 문제의 기술 환원: 세상의 모든 문제를 기술로 환원한다. 지구 온난화는 나노 기술이 풀어 줄 것으로,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 제약의 무력화: ‘인류를 구원한다’는 과장된 목적 아래 ‘모든 제약을 무시해도 된다’는 사고를 정당화한다.
- 성장 서사의 이해관계: ‘항구적인 성장’이라는 약속이 결국 기술업계의 이익에 복무한다.
저자는 실현될 수 없는 기술에 대한 집착이 사실은 ‘부와 권력을 독점해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로 탈출하려는 욕망’에서 나온다고 본다.
번역자인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그들의 꿈은 실리콘 인간이 온기 없는 행성 간 공간을 영원히 떠다니게 하겠다는 우주 제국 건설의 꿈”이라고 했다.
전망: 서사 리스크를 읽는 시사점
지표 대신 책이 제시하는 논리로 흐름을 가늠하면, 시사점은 분명하다. ‘단 하나의 최선’을 표방하는 집중형 서사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누군가가 인류를 위한 단 하나의 최선의 길을 안다’고 주장할 때 깊은 의심을 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주를 “거대한 자원의 저장고” 이상으로, 인간을 그 자원을 “다 빨아먹는 존재” 이상으로 보라는 것이다.
실무적 해석은 이렇다. 구원 서사는 자본을 한 방향으로 쏠리게 하는 내러티브 자산이다. 따라서 ‘구원’ 수사가 강할수록 제약 무시·이해상충의 신호로 역으로 읽는 균형추가 필요하다.
결론
베커는 빅테크의 ‘인류 구원’ 비전을 실현 불가능한 공상이자 부·권력 독점 욕망의 외피로 본다. 핵심은 현황(특이점·영생 서사)·원인(문제의 기술 환원과 성장 이해관계)·전망(집중형 서사에 대한 의심)으로 요약된다.
- 검증 우선: ‘단 하나의 최선’을 내세우는 주장은 근거와 이해관계를 먼저 따져본다.
- 균형추 확보: 기술 만능 서사를 접할 때 불평등 등 사회적 제약 비용을 함께 계산한다.
- 원전 확인: 본서를 직접 읽어 ‘구원 서사’의 작동 방식을 점검한다.
“인간의 저항을 통해 바꾸지 못할 인간의 권력이란 없다.” — 어슐러 K 르 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