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습니다. 작가 한 명이 외롭게 쓴 책이 아니라, 무려 서른여섯 명이 손을 맞잡고 이어 쓴 소설이라니요.
오늘 다시 들여다보는 이 책은 『14일』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와 더글러스 프레스턴을 비롯한 북미 작가 36명이 함께 쓰고, 남명성 님이 옮겼습니다. 592쪽, 2만2000원, 비채에서 나왔습니다.
봉쇄된 도시에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의 배경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월 31일, 미국 뉴욕입니다. 도시는 봉쇄됐고 부자들은 도망쳤습니다. 남겨진 건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낡은 빌라 관리인인 '나'는 전임자가 남긴 옥상 열쇠와 세입자를 기록한 노트를 발견합니다. 옥상을 열자,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던 세입자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모입니다.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던 사람들이 결국 옥상이라는 한 자리로 올라온다는 것. 그게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진짜로 필요로 하는 풍경 같아서요.
우리는 비슷한 걱정을 안고 삽니다
요즘 비슷한 처지의 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혼자 버티는 게 익숙해진 사람들. "이렇게 고립된 채로 괜찮을까" 하고 조용히 걱정하는 마음들이요.
『14일』 속 세입자들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했고, 자기 방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위로가 됩니다.
- 액자식 구성: 큰 팬데믹 이야기 틀 속에서 각 인물이 자기 사연을 풀어냅니다.
- 장르의 다양성: 로맨스, 스릴러, SF부터 순문학, 논픽션까지 아우릅니다.
- 실험적 흐름: 한 인물의 이야기가 흐르다 다른 인물이 난입해 새 흐름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흐름이 바뀐다는 것. 우리 삶도 그렇게 누군가의 등장으로 방향이 바뀌곤 하지요.
작가마다 캐릭터와 파트를 나눠 맡았는데, 어떤 작가가 어느 부분을 썼는지는 소설이 끝난 뒤에야 밝혀집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 『증언들』로 부커상을 받은 작가이고, 더글러스 프레스턴은 미국 작가 조합 의장입니다.
걱정 속에서도 붙잡을 단단한 지점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던지는 가장 단단한 위로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다 쓸 수 없는 이야기도, 함께라면 592쪽이 된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판부터 주술사의 오컬트, 범죄자의 소름 돋는 고백까지. 그 다양한 목소리가 한 권 안에 어색하지 않게 섞입니다. 우리의 다른 모양도 결국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결론
『14일』은 36명의 작가가 봉쇄된 뉴욕의 옥상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고립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소설입니다. 혼자라는 걱정이 깊은 날일수록, 저는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적어 둡니다.
- 한 챕터만 읽어보기: 592쪽이 부담된다면 옥상에 사람들이 모이는 첫 장면부터 펼쳐 보세요.
- 추측하며 읽기: 북미 소설가에 관심이 있다면, 누가 어느 파트를 썼을지 추측하는 재미를 누려 보세요. 몰랐던 작가를 새로 발견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 누군가에게 권하기: 요즘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이 책을 건네 보세요. 옥상 열쇠를 나누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