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14일'(마거릿 애트우드·더글러스 프레스턴 외 34인, 남명성 옮김, 592쪽, 2만2000원)은 북미 작가 36명이 함께 쓴 실험적 장편소설이다. 화려한 참여진과 기획만 보면 성공이 보장된 듯하지만, 회의적으로 보면 짚어야 할 전제와 함정이 적지 않다.

지금의 통념: 거장 36명이 모이면 걸작이 된다?

통념은 단순하다. 부커상 수상 작가 애트우드('시녀 이야기' '증언들')와 미국 작가 조합 의장 출신 프레스턴까지 36명이 합심했으니 평균 이상은 보장된다는 기대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월 31일 봉쇄된 뉴욕, 부자들은 도망치고 남은 가난한 사람들, 빌라 옥상에 모여 각자 이야기를 꺼내는 액자식 설정도 흡인력이 있다.

문제는 '유명 작가 다수=완성도'라는 등식이 검증된 적 없다는 점이다. 이는 기대일 뿐 결과가 아니다.

모두가 놓치는 맹점: 협업 소설 구조 자체의 함정

이 책의 핵심은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36명이 각 캐릭터와 파트를 나눠 쓴다는 점이다. 여기서 의심해야 할 변수가 드러난다.

  • 톤의 불균질 위험: 로맨스, 스릴러, SF, 순문학, 논픽션을 아우르는 작가들이 섞이면 장르 톤이 한 권 안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 일관성 누수: 뉴스에 따르면 한 인물의 이야기가 진행되다 다른 인물이 난입해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실험으로 읽히면 매력이지만, 봉합이 어긋나면 산만함으로 읽힌다.
  • 화제성 의존: '누가 어느 파트를 썼는지는 소설이 끝난 뒤 밝혀진다'는 장치는 추측의 재미를 주지만, 동시에 내용보다 게임적 장치가 평가를 떠받치는 구조일 수 있다.

릴레이 형식의 공동 창작은 본래 화제성은 크되 작품적 완성도는 들쭉날쭉했던 형식이다. 36명이라는 숫자는 강점이자, 통제 난도를 그만큼 높이는 양날의 칼이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잃는 것

가장 큰 리스크는 2만2000원·592쪽을 '거장 컬렉션'으로 기대하고 샀다가 단편 모음집에 가까운 독서 경험을 얻는 경우다. 또 트럼프 대통령 비판, 주술사의 오컬트, 범죄자의 고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특정 정치·소재에 대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개연성도 있다. 팬데믹이라는 큰 틀이 36개의 목소리를 끝까지 묶어주지 못하면, 실험성은 미완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판단을 화제성에 맡기지 말고 구조를 보고 검증할 것을 권한다.

  • 도입부의 빌라 관리인 '나'의 액자 틀이 끝까지 묶음줄 역할을 하는지 확인한다.
  • 좋아하는 작가 한두 명이 있다면, 그 파트만 기대하기보다 전체 흐름의 연결을 기준으로 본다.
  • '누가 썼나' 추측 게임을 빼도 남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지 의심하며 읽는다.

결론

'14일'은 36명의 북미 작가가 모인 보기 드문 협업 실험이다. 다만 '거장 다수=걸작'이라는 통념은 전제일 뿐이고, 협업 소설 특유의 톤 불균질과 일관성 리스크, 화제성 의존이라는 함정이 함께 따라온다. 다음 단계를 제안한다.

  • 구매 전: 옥상 액자 구조와 톤이 궁금하면 서점에서 도입부와 두세 파트를 먼저 시독한다.
  • 독서 중: 한 인물 난입으로 흐름이 바뀌는 지점을 표시하며, 실험인지 산만함인지 스스로 판단한다.
  • 독서 후: 작가 공개 페이지를 펼치기 전, 어느 파트가 인상 깊었는지 먼저 적어 두고 추측의 재미와 작품성을 분리해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