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 동시에 시큰해졌습니다.

체코 프라하의 어느 지하 작업장. 35년 동안 폐지를 압축하며 그 속에 담긴 인류의 지성과 철학을 흡수한 압축공 ‘한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다음 달 3일 서울 종로구 SH아트홀에서 연극으로 막을 올린다는 소식이었어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제 마음은 왜 흔들렸을까요

겉보기엔 거칠고 외로운 노동자지만, 수십 년간 책과 정신적 교감을 한 한탸의 내면은 풍요롭고 시끄럽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효율성과 기계화를 앞세운 현대식 압축기가 등장하면서, 한탸는 치명적인 위기를 마주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오래도록 한 가지 일을, 한 가지 사랑을 지켜온 사람 앞에 ‘더 빠른 기계’가 들어서는 순간. 그건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책을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책이 된 한 남자.

한탸 역을 맡은 배우 정동환(77)은 이 연극을 두고 “연극이 책에 바치는 헌사”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요

저는 압축공도 아니고 프라하에 살지도 않지만, 한탸의 불안이 남 일 같지 않았어요. 아마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내가 오래 해온 일이, 더 효율적인 도구 앞에서 쓸모없어지면 어쩌지
  • 내가 아끼는 방식이 ‘낡은 것’으로 밀려나면 괜찮을까
  • 종이책처럼, 천천히 깊어지는 것들은 이제 자리를 잃는 걸까

이런 걱정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한탸가 3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쌓은 내면이 있었기에, 그 위기가 더 아프게 다가온 거니까요. 사랑이 깊을수록 걱정도 깊은 법이라고,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단단한 지점

그럼에도 저는 이 작품에서 분명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붙잡을 지점이 있더라고요.

첫째, 깊이 쌓은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동환 배우는 실제로도 엄청난 다독가로, 2017년 7시간짜리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1인 5역을 맡았을 때 도스토옙스키 원작을 완독하고 대심문관의 35분짜리 독백을 완벽히 구현했다고 해요. 괴테의 ‘파우스트’, 톨스토이의 ‘참회록’,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햄릿’까지, 맡은 작품의 원작을 꼭 찾아 읽는 분입니다. 한 사람이 천천히 쌓은 시간은, 결국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둘째, 느린 방식은 새로운 형태로 이어집니다. 이번 연극은 관객이 책을 읽듯 대사를 인지하는 ‘독극(讀劇·읽는 연극)’ 형태로 진행됩니다. 배우가 말로 전하는 것뿐 아니라 수어를 쓰고, 글씨를 쓰고, 미리 녹음된 음성을 트는 방식까지 동원해요. 극장 입구부터 로비, 객석 위까지 옛 신문 폐지와 헌책으로 가득 채워 한탸의 지하실처럼 꾸민다고 합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정성스러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죠.

저는 이 지점에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느린 것들은, 효율에 밀려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헌사로 다시 태어나는구나 싶어서요.

결론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 한탸의 위기는, 오래된 사랑을 지켜온 우리 모두의 걱정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쌓은 시간은 무대 위에서 되살아나고, 느린 방식은 새로운 형태로 이어진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건네는 단단한 위로였습니다.

오늘 마음이 흔들리셨다면, 이렇게 해보시길 권합니다.

  • 원작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한 권 곁에 두기 — 산뜻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길지 않은 작품입니다.
  • 공연 일정 확인하기 — 다음 달 3일 SH아트홀 개막, 다음 달 19일까지. 책 한 권을 완독하고 나가는 체험을 의도한 무대입니다.
  • 내가 오래 사랑해온 ‘느린 일’ 하나를 적어보기 — 효율에 밀린다 느껴질 때, 그것이 나를 살게 한 시끄러운 고독은 아니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