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이 소식을 읽다가 잠깐 숨을 골랐습니다. 멀리 유럽의 무대에서, 우리 또래의 목소리가 1위로 불렸다는 이야기.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일렁이더군요.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하는, 그런 마음이요.
처음 이 소식을 봤을 때, 저는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금호문화재단은 9일, 베이스 박성민(26)이 7일(현지 시간) 라트비아 유르말라에서 폐막한 제44회 한스 가보르 벨베데레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벨베데레 콩쿠르는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관계자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이른바 '성악가의 등용문'으로 꼽히는 무대입니다. 박성민은 결선에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중 필리포 2세의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네'를 불렀고, 같은 콩쿠르 결선에 오른 베이스 김선진도 3위에 올랐습니다.
같은 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폐막한 2026 카스카이스 오페라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는 소프라노 박누리(28)가 여성 부문 1위, 바리톤 최준영(29)이 남성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이름들을 가만히 따라 읽으며, 박수보다 먼저 그들이 지나왔을 무수한 연습실의 밤을 떠올렸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사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빛나는 소식 앞에서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저처럼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거예요.
- "저 나이에 저만큼인데, 나는 괜찮을까."
- "내가 가는 이 길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 "비교하지 말자면서도 자꾸 작아지는 이 마음, 어떻게 다독이지."
저는 이런 걱정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정상이 또렷하게 보일수록, 내 발밑의 오르막이 더 가팔라 보이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그래서 저는 이 소식에서 '우승'이라는 결과보다 그들이 남긴 말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박성민은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성악가가 되겠다"고 했고, 박누리는 "해외에서 이룬 첫 성과인 만큼 뜻깊다"며 "더욱 깊이 있고 성숙한 예술가로 성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에 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 건 '완성'이 아니라 '성장'과 '초심'이었습니다. 1위를 한 그들조차 자신을 여전히 자라는 중인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저는 여기서 작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박누리와 최준영이 우승한 카스카이스 콩쿠르는 만 18~32세 성악가를 대상으로, 젊은 음악가의 국제 무대 진출을 돕기 위해 2024년 창설된 비교적 새 무대입니다. 누군가는 오래된 등용문에서, 누군가는 갓 생긴 무대에서 길을 열었다는 뜻이죠.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늦게 생긴 무대도 누군가의 첫 1위가 된다는 것. 우리의 타이밍도 그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결론: 비교가 아니라 방향으로
오늘 우리는 20대 성악가 박성민·박누리·최준영의 국제 콩쿠르 잇단 우승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들의 빛이 내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드는 대신, 내 방향을 비추는 등으로 쓰였으면 합니다.
마음이 작아진 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 '초심' 한 문장 적어두기: 그들이 우승의 순간에 꺼낸 단어가 초심이었습니다. 내가 이 길을 시작한 이유 한 줄을 오늘 메모해 두세요.
- 비교의 단위를 바꾸기: '저 사람만큼'이 아니라 '어제의 나만큼'으로. 성장은 등수가 아니라 어제와의 차이에서 옵니다.
- 나만의 무대 찾아보기: 2024년 생긴 콩쿠르처럼, 늦게 열린 길도 분명 있습니다. 내 결을 받아줄 새 무대를 한 곳 찾아보세요.
저는 당신의 속도가 틀린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늘의 박수는 그들의 것이지만, 내일의 무대는 아직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