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취향으로 여겨지던 마니아 문화가 홍대·합정·망원 일대 골목 상권을 점령하며 '한국의 아키하바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강력한 소비 동력으로 작동하는 이 흐름을 거시·시장 관점에서 짚어본다.
현황: 골목 상권이 글로벌 팬덤의 집결지가 되다
지난 19일 찾은 망원역 인근의 한 카페는 일본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 피규어로 가득했다. 1만3000원짜리 칵테일 '잉크(ink)'를 주문하자 주인공 '쿠죠 죠타로' 피규어가 함께 나왔다. 매장에는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은 물론 서양권 관광객까지 국적을 불문하고 자리를 채우고 있다.
홍대입구역 방향의 또 다른 바(Bar)는 입구부터 화장실까지 '에반게리온' 굿즈로 도배돼 있다. 원하는 캐릭터를 지정하면 맞춤 '커스텀 칵테일'을 조제해 준다. '체인소맨'의 레제, 에반게리온의 레이를 모티프로 한 칵테일 인증샷이 SNS에 잇따른다.
이 마니아 소비는 대형 유통 플랫폼의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 AK플라자 홍대점: 2021년 상권 특성을 반영해 매장 전반을 마니아 특화 공간으로 전면 리뉴얼. 5층 애니메이션 전문점 '애니메이트'는 평일에도 굿즈 구매객으로 붐빈다.
- 메가박스 홍대점: 최근 국내 멀티플렉스 최초의 '애니메이션 특화 극장'으로 단장. 애니 편성 비중을 압도적으로 높이고 상설 굿즈 매장까지 구축했다.
'디깅 소비'란 특정 취향을 깊게 파고들며 시간과 돈을 집중 투입하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경기 불황을 뚫는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인: 숫자로 검증된 '디깅 소비'의 힘
핵심은 데이터다. AK플라자 홍대점의 매출은 다음과 같이 움직였다.
- 2021년: 약 277억원 (리뉴얼 초기)
- 지난해: 약 982억원
- 최근 5년 연평균 성장률: 38.5%
- 지난해 매출: 전년 대비 17.3% 증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연 38%대 복리 성장은 일반 유통 채널에서 보기 드문 수치다. 이를 가능케 한 원인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수요의 비탄력성이다. 팬덤 기반 소비는 가격이나 경기 변동에 덜 흔들린다. 1만원대 칵테일에 피규어를 묶는 구조처럼, 객단가를 높여도 이탈이 적다.
둘째, 인바운드 관광 수요와의 결합이다. 국적을 불문한 외국인 방문이 골목 상권의 매출 저변을 넓힌다.
셋째, 공급자의 선제적 베팅이다. AK플라자는 2021년 상권 특성을 읽고 전면 리뉴얼에 나섰고, 집객이 데이터로 검증되자 메가박스 같은 극장가까지 가세하는 연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망: 상권 지각변동의 신호인가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 코리아가 개최한 온라인 웨비나 '2026 핵심 상권 지각변동' 자료 역시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시사점은 분명하다. 소비 양극화 국면에서 '의미 있는 지출'에 집중하는 디깅 소비는 단기 유행보다 구조적 변화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한 점포의 성공이 동종 업태(카페·바)를 넘어 백화점, 극장으로 확산되는 패턴은 상권 전체의 색깔을 바꾸는 신호다.
다만 주의할 지점도 있다. 특정 IP(지식재산) 인기에 의존하는 구조는 콘텐츠 사이클에 민감하다. 임대료 상승과 동종 점포의 과밀 출점이 겹치면 수익성이 압박받을 수 있다는 점은 가능성으로 열어둘 필요가 있다.
결론
홍대·합정·망원 일대의 마니아 상권은 경기 불황 속에서도 AK플라자 홍대점의 연평균 38.5% 성장, 지난해 982억원 매출이라는 측정 가능한 성과로 '디깅 소비'의 힘을 입증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실행할 항목은 다음과 같다.
- 상권 점검: 본인 사업·투자 관점에서 홍대·합정·망원 일대 마니아 업태의 입지와 객단가 구조를 직접 확인한다.
- IP 의존도 분석: 특정 IP 한 곳에 매출이 쏠리지 않도록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분산 설계한다.
- 인바운드 데이터 추적: 외국인 방문 비중과 SNS 인증 추이를 정기 지표로 삼아 수요의 지속성을 모니터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