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 선관위의 "집단 항명"은 단순한 불성실 문제다

뉴스 헤드라인은 명확하다. 증인으로 채택된 중앙·지역 선거관리위원 19명 중 16명이 국정조사 첫날 불출석했고, 여야 의원들의 질타 후에야 14명이 뒤늦게 나타났다. 이를 두고 여야는 일제히 "국민에 대한 집단 항명"이라고 비판했다. 표면만 보면 선관위의 태도는 불성실해 보인다.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책임자들이 먼저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이 통념 하나만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맹점: 무더기 불참은 조직적 신호, 기억 상실은 원칙적 회피

불참의 패턴을 자세히 보면, 것은 단순한 '약속 위반'이 아니라 조직적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중앙선관위 비상임위원 7명이 전원 불참했다. 서울송파구선관위 소속 선관위원 8명도 전원 불참했다. 이는 개인의 실수나 일정 충돌로 보기 어렵다. 같은 급 또는 같은 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일괄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의 판단 또는 관례적 지시가 작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나중의 증언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결정 보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시에 위철환 위원장 직무대행은 "보고를 받았지만 (별도)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은 책임 소재를 무화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보고는 받았지만 논의는 없었다"는 답변은 보고는 인정하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투표용지 인쇄 축소 결정은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내렸나. 뉴스에 명시된 범위 내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온 것은 "기억 나지 않음"과 "논의 없음"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두 진술이다.

리스크: 책임 규명의 함정

첫날 불참과 이후의 엇갈린 증언은 국정조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증인들의 일관된 불협력 신호(무더기 불참)와 기억 상실이 반복되면, 조사의 진행성은 점점 약화된다. 왜냐하면:

  •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증인 불참도 제재가 제한적이다.
  • 증언의 엇갈림은 더 심한 조사를 요구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추가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조사는 교착 상태에 빠진다.
  • 책임자가 조직적으로 회피의 신호를 보내면, 그것은 조사 과정 자체를 약화시키는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그 자체보다 책임 규명 과정의 투명성 상실이 국정조사의 진정한 리스크라는 것이다. 사태의 원인을 찾지 못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질문들:

  • 다음 증인 소환이 있을 때 출석률이 높아지는가? 첫날의 무더기 불참이 일회성 사건인지, 아니면 조직적 회피 패턴의 시작인지를 판단하는 지표.
  •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증언이 반복되는가? 그렇다면 조사는 사실 규명보다 책임 소재 무화에 직면하게 된다.
  • 투표용지 축소 결정의 기록(회의록, 보고 문서, 결재 흔적)이 공개되는가? 증언의 엇갈림을 넘어, 객관적 증거의 존재 여부가 결정적이다.

책임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가 벌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의 맹점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지금 국정조사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이 진정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