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가 지난달 첫 회칙 '고귀한 인류'를 반포하며 AI의 '무장해제'를 경고했다. 표면적으로는 AI의 올바른 사용을 권고하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지만, 신학·경제·기술 영역을 횡단하는 심층적 우려가 담겨 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올해 말까지 신학적·윤리적 토대의 AI 지침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노동시장 변화로 드러나는 AI의 경제적 영향
교황의 경고가 추상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미 현실화되는 피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노동시장에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은 작년 한 해 3만 명을, 메타는 지난달 8,000여 명을 해고했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가 1,200명에 달했으나, 회계법인 등에 실제로 채용된 인원은 3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는 자격 취득과 실제 취업 기회 사이의 괴리가 AI로 인한 인원 감축 때문임을 시사한다.
더 우려스러운 신호는 전쟁터에서도 감지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활용 중이다. 인간 대체뿐 아니라 군사적 자동화도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해석 불가능성'이라는 기술적 위기
이 모든 현상의 근저에는 현재 생성형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AI TF에 참여 중인 김도현 신부(KAIST 물리학 박사, 국내 유일의 물리학자 신부)는 "딥러닝에 기반한 현재의 생성형 AI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계산을 수행하는지 제대로 해석을 못 하고 있다"며 "해석이 안 되니 통제할 방법도 구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술 시스템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교황이 발표 현장에 초청한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 크리스토퍼 올라도 AI의 자율 살상 무기 및 대규모 감시 활용에 반대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은 인물이다. 올라의 오랜 연구 주제가 딥러닝 내부의 해석 가능성이라는 점은, 기술 진영 내에서도 현재의 AI 시스템이 근본적 위험을 안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존엄성 재정의의 시급성
교황이 회칙의 부제를 '인간 존엄성 수호'로 설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이는 급진적 전환이다. 김도현 신부는 "2,000년간 신학의 흐름은 신과 교회를 중심에 두고 재해석하는 과정이었다"면서 "최근 신학 연구의 초점이 인간에게 맞춰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을 한없이 닮은 AI가 출현했을 때,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면 "인간과 AI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교황의 우려다.
이는 단순한 윤리 논의가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근본적 질문이다. 기술에만 몰두하면 전쟁, 실업 등의 사회적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와 맞닿아 있다.
결론: 규제와 성찰의 균형점 모색
교황의 '무장해제' 발언은 AI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진보와 인간 존엄성 사이의 균형을 되찾자는 호소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신학적 지침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겠다는 것도 이 같은 방향성을 반영한다.
기업의 인력 감축이 가속화되고, 전쟁터에 무기가 되는 AI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 자체의 거부가 아니라 해석 가능성 확보, 투명성 강화,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이다. 정부·기업·종교계·학계가 함께 AI의 통제 방안을 마련하고, 기술로 인한 사회적 피해에 미리 대응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현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