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변화: 후공정에서 전공정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청와대에서 1시간 넘게 만나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집중 논의했다. 주목할 점은 협상의 방향 전환이다. 삼성전자는 당초 후공정 공장 신설을 유력 안으로 제시했으나, 이날 회동에서는 전공정 팹(Fab) 신설이 협상의 중심이 되었다.
전공정 팹은 반도체의 핵심 공정이다. 웨이퍼에 직접 회로를 새기는 단계로, 1기당 최소 60조 원에서 100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 후공정 공장(패키징, 검사 단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다. 전공정 팹의 이전은 단순히 건물 이동이 아니다. 관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와 핵심 엔지니어들이 모두 이동하는 산업 생태계 전환을 의미한다. 광주·전남 지역이 반도체 산업의 가치사슬 전체를 흡수하게 되는 셈이다.
1000조 원 메가 프로젝트와 지역 균형 발전의 의도
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삼성, SK가 주축이 되고 한화, GS, 두산 등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이번 투자 규모는 1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구도는 지역 분산 기조를 반영한다.
- 호남: 반도체(광주·전남 첨단3지구)
- 충청: AI 데이터센터 거점
- 영남: 피지컬 AI 투자 확대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일부 산업의 경이적인 성장 효과가 지방까지 확산되지 못해 불균등의 골이 심화될 수 있다"며 "핵심 산업 투자를 영남이나 충청, 강원, 제주, 호남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정부 정책은 서울·경기·인천 중심의 산업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의 고부가가치 산업 유입을 가속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국내 반도체 설비 포화와 확장의 필연성
이러한 지역 분산 전략이 나온 배경에는 산업의 현실적 제약이 있다. 포스텍 이병훈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국내 반도체 설비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확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시설은 대부분 경기도(용인, 화성, 이천 등)에 집중되어 있다. 글로벌 반도체 수급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와중에 새로운 생산 기지 확보는 공급망 분산과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경쟁력—고급 노드(3나노, 2나노 이하) 양산—을 뒷받침하려면 추가 팹의 건설이 불가피하다. 삼성이 호남에 전공정 팹 신설을 고려하는 것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생산 기지 다원화를 통해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행 단계와 향후 과제
삼성전자는 25일 저녁 고위 경영진 회의를 거쳐 광주·전남 메모리 팹 신설에 무게를 두고 투자 규모와 시점을 최종 조율했다. 호남권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지역으로는 광주와 전남 장성에 걸친 첨단3지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전공정 팹의 실현까지는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정부의 인프라 지원(부지 조성, 전력·물 공급, 교통 인프라), 세제 혜택(법인세 감면 등), 그리고 기술 전문가 인력 확보와 협력업체 생태계 조성이 필수다. 이 교수가 "성공적인 지방 분산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단순한 투자 공시를 넘어, 실질적인 산업 기반 조성이 관건이 된다는 뜻이다.
결론
삼성의 호남 팹 투자 계획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공급기지 확보와 지역 균형발전의 동시 달성을 노리는 정책적·경제적 선택이다. 25일의 회담은 단순한 투가 협의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역 다원화 방향을 확인시킨 신호다. 이어 29일 메가 프로젝트 발표로 구체적 규모와 타이밍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단계:
- 29일 정부 발표 내용에서 팹 신설 시점, 투자액, 지원책의 구체성 확인
- 삼성의 공식 입장 발표와 팹 첨단화 로드맵(생산 노드, 용량) 점검
- 충청·영남 AI 데이터센터 계획과의 연계성 및 호남 클러스터의 소부장 기업 참여 동향 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