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소아의료 공백, 수도권 집중의 극단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권칠승 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는 한국의 의료 불균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70곳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명 이하 수준으로, 사실상 '의료 무의촌' 상태다. 더 심각한 것은 15개 시군구에서는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경남 함안군이 대표 사례다. 18세 이하 인구 6523명이 거주하지만 소아과 전문의는 0명이다. 20년 전 소아과 의원이 문을 닫은 이후 4년 전부터는 공중보건의사도 배치되지 않으면서 전문적인 소아 진료 체계가 완전히 붕괴했다.
수도권 쏠림과 격차의 메커니즘
의료 공급의 불균형은 단순한 지역 간 격차를 넘어 체계적 불평등이다. 전국 6504명의 소아과 전문의 중 49.8%(3237명)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강남구만 해도 소아과 전문의 211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무의촌 70곳의 전문의를 모두 합친 77명을 압도한다.
인구 1만 명당 전문의 수로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 서울: 1만 명당 14.36명
- 충남: 1만 명당 5.91명
서울이 충남의 2.4배다. 전남(광주 통합 전 기준 6.11명), 경북(6.02명)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부족 상태다.
원인: 비용 구조와 시장 신호의 불일치
이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의 실패다. 소아과는 의료 수가가 낮고 야간·응급 당직 부담이 크면서도, 대도시 선호 현상이 심하다. 함안군, 보성군, 하동군 등 의료 공백 지역의 주민들은 자녀가 발열이나 복통을 호소하면 인근 창원, 광주, 진주 등 대도시로 '원정진료'를 떠난다. 경남 하동군은 심층 진료가 필요할 때면 더 먼 곳으로 이송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지자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향사랑 기부제나 지정 기부금을 모아 전문의를 영입하려 시도하고 있다. 전남 곡성군과 영암군은 최근 기부제를 통해 소아과 전문의를 각 1명씩 데려왔고, 담양군은 2억5000만 원의 진료실 운영 자금 중 약 80%를 모금했다. 그러나 급여를 높여도 지방 근무를 꺼리는 전문의가 많아 모금과 실제 배치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
전망과 시사점: 정책 개입 없이는 악순환 심화
현재의 추세라면 의료 불균형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저출산으로 소아 환자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데,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지방의 소아과 진료 수요가 감소하면서 채산성 악화로 의료 공급은 더욱 축소될 수 있다. 둘째, 지자체의 기부금 모금과 같은 임시방편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 의료 수가 재조정, 지방 근무 인센티브 확대, 공보의 배치 강화 같은 국가 수준의 정책 개입이 필수다.
시장 신호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의료다. 소아의료는 응급성이 높고 접근성이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로, 단순히 경제성 논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론
함안군의 6500명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한국 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한다. 수도권 중심의 의료 자원 배분, 비효율적인 수가 체계, 그리고 지방 의료 붕괴가 악순환을 이루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자체의 노력이 일부 완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종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의료 수가 기준 검토, 지방 의료 기반 시설 확충, 그리고 필요시 의사 배치 유도 제도 도입 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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