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제48차 본회의에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을 채택했다. 한국이 주도한 이 선언은 기존 5가지 전략목표에 '협력(Collaboration)'을 여섯 번째 C로 추가하고, AI 등 디지털 전환을 처음 공식 의제화했다. 언뜻 보면 진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의도와 실행 사이의 간격이다.

지배적 통념: "협력과 기술이 세계유산 위기를 해결할 것이다"

현장의 메시지는 낙관적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부산 선언이 이번 세계유산위의 핵심 성과이자 미래를 향한 이정표"라고 말했고,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세계유산센터장도 "이번 선언이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선언문은 무력분쟁과 기후변화, 개발 압력 같은 "복합적 난관"이 개별 국가 힘만으로는 대응 불가능하므로 협력이 필수라고 진단했다.

A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언은 디지털 기술을 "장려"하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묵적 가정은 명확하다: 협력하면 되고, 기술을 쓰면 유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통념이 정말 맞을까: 숨겨진 리스크와 맹점

1. "협력"은 선택사항이지 의무가 아니다

선언은 협력의 필요성을 명시했지만, 실행 메커니즘은 명확하지 않다. 누가 주도하나? 자금은? 분쟁 지역의 국가가 거부하면? 국가 주권 문제가 개입되는 순간 협력은 약해진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자체가 50년 이상 존속했지만, 실제 보호는 각국의 정치적 의지에 좌우됐다. 팔레스타인 유산, 시리아 유산, 우크라이나 유산처럼 분쟁 지역 유산은 선언이 아닌 정치 결정에 의해 위험에 노출된다.

2. AI는 만능 도구가 아니다

허 청장이 "AI를 활용해 기후변화나 전쟁 같은 위기로부터 유산을 지켜낼 기술력을 창출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기술 유토피아니즘의 함정이다. AI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지와 분석이지, 정치적 갈등이나 전쟁 자체를 멈추지 못한다. 또한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 문제가 있다. 선진국 유산에 대한 디지털 자료는 풍부하지만, 개도국·소수민족 유산의 데이터는 부족할 확률이 높다. 이는 "디지털 격차 해소"라는 선언의 핵심 목표를 역설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3. 구속력 없는 선언의 한계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참고 뉴스에 따르면 허 청장은 "부산 선언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해마다 부산에서 관련 포럼을 여는 등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하겠다'는 의지 표현일 뿐이다. 유네스코 역사를 보면 비구속적 선언과 지침은 많지만, 실제로 국가가 이를 자국의 이해관계보다 우선시한 경우는 드물다.

최악의 시나리오: 기대와 현실의 괴리

만약 이 선언이 선언에 그친다면? 국제사회는 "세계유산을 협력으로 보호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만 남고, 실제 위기에는 여전히 국가 이해관계가 우선한다. 특히 개도국이 개발 압력에 직면했을 때, 국제 협력의 요청은 경제 현실 앞에 무력할 수 있다. 또한 AI 도입의 역효과—오류로 인한 잘못된 보존 정책, 기술 종속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론: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부산 선언 자체는 방향성이 타당하다. 그러나 선언의 채택과 실행은 다르다는 전제에서 봐야 한다. 진짜 평가는 1년 뒤다.

체크해야 할 것:

  • 협력을 위한 구체적 자금과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공개되었는가
  • 분쟁 지역 유산 보호에 실제 조치가 취해졌는가
  • AI 도입 사례에서 개도국도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

선언은 출발점일 뿐이다. 회의적 낙관주의를 유지하면서 후속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

#부산선언 #세계유산보호협력 #유네스코 #AI디지털전환 #국제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