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펼쳐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렙니다. 실제로 가기는 어렵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더 자주 향수에 잠깁니다. 가본 곳, 못 본 곳, 그 어디든 지명을 보면 무언가가 떠오릅니다. 오늘의 당신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지명이 불러내는 향수의 언어
한 가지 흥미로운 시 쓰기 방식이 있습니다. 고려 말의 시인 권근이 1389년 명나라의 금릉을 다녀오며 지은 연작시들처럼, 구절마다 지명을 넣어 읊는 것인데요. 실제 이동 경로인 사문도, 갈석산, 연, 요 같은 지명과 전설 속 공간인 봉래, 영주를 교묘하게 섞아 사행 경험을 담아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실제 여행 기록보다는 가기 어려운 먼 곳의 이름들을 호명하면서 자신이 본래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낯설고 먼 것들이 가깝고 익숙한 것들을 소환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까?
현대의 우리는 어떤가요? 영화 "Up In The Air"의 주인공 라이언 빙엄처럼, 미국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등 수많은 도시를 거쳐 다닙니다. 1년에 322일을 비행기로 이동하며 1000만 마일리지를 목표로 하는 현대인. 비행기 안에서 기장이 축하하며 집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여기"라고 답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갈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가 집인지 헷갈리는 마음 말입니다. 이 시대의 불안감입니다.
먼 곳의 이름들이 가까워지는 순간
그렇다면 한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여행 기록을 넘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수사학 말입니다.
한시의 지명들은 단순한 목록이 아닙니다. 호명되는 순간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공간의 파노라마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가기 어려운 곳의 이름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이미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동시에 그 낯선 곳들이 또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기 힘든 곳을 생각해보세요.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그곳.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신 안에는 무언가가 활성화됩니다. 지난 경험들, 소중한 누군가들, 잃어버린 시간들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결론
가기 힘든 곳을 떠올리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향수이고, 그 향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현대인처럼 어디든 갈 수 있어 보이지만 정작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당신이 지금 떠올린 가기 힘든 곳은 어디인가요? 그 이름을 천천히 읊어보세요. 마치 권근이 했던 것처럼, 마치 한시가 해온 것처럼. 그 안에서 당신이 진정 집이라고 느껴야 할 곳, 지금 바로 그곳이 무엇인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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