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인텔이 15년 만에 최대 매출 실적을 발표했는데 오늘 코스피는 2.2% 폭락했다. 반도체는 극강(極强)인데 증시는 극약(極弱)이다. 이 모순은 단순한 시장 심리가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의 과도한 AI 투자가 금융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신호다.

인텔 역대급 실적, 반도체 소부장은 뜨는데

인텔이 공개한 2분기 실적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EPS(주당순이익)는 예상치 대비 91% 초과 달성했고, 매출액과 gross profit margin도 모두 컨센서스를 상회했다. 특히 인텔이 강조한 것은 매출 성장률이다. 15년 만에 최강의 성장 속도를 기록했다. 이는 CPU(중앙처리장치) 수요의 폭증이 일으킨 결과다.

데이터센터용 AI 칩 수요가 급증하면서 CPU와 GPU(그래픽처리장치)의 비율 구조가 변하고 있다. 기존에는 8대 1(CPU:GPU)이던 비율이 향후 1대 1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는 CPU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신호였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인텔의 투자 계획이다. 올해 케팩스(자본지출)를 18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고, 내년에는 의미 있는 추가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도 비슷한 타이밍에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이런 대규모 투자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이익을 가져다줄까.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다.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는 리드타임(주문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보고했다. 주문이 너무 많아서 생산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반도체 장비의 쇼티지(부족)까지 우려하기 시작했다.

빅테크의 'AI 투자 계속' 선언이 악재가 된 까닭

문제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좋다는 소식이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지난 밤 미국 시장에서의 하락이다.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은 2분기 실적 이후 -7.13%로 폭락했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도 함께 하락했다. 모두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로 불리는 대규모 클라우드 사업자들이다. 반도체를 엄청나게 많이 사야 하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왜 폭락했을까. 알파벳이 공개한 재무 상황이 문제였다. 프리 캐시플로(자유 현금흐름)가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다시 말해, 회사가 버는 돈보다 투자에 쓰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인상된 금리 환경에서 자금 조달 비용도 올랐다.

경영진들은 "AI 투자는 미래를 위한 것이므로 현금흐름 악화를 우려하지 말아달라"고 주주들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의 투자자들은 '워렌 버핏 식' 보수주의에 빠진 상태였다. 현금 흐름을 보고만 하려는 보수적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나스닥은 하루에 -2.2%를 기록했는데, 이는 2% 이상 하락이 드물었던 나스닥으로서는 오랜만의 큰 낙폭이다.

코스피, 기술적 지지선 붕괴… 레버리지 청산 악순환

국내 증시도 미국의 하락을 따라갔다. 어제는 일주일 만에 코스피가 7,000선을 회복했다는 희소식이 나왔는데, 오늘은 다시 기술적 지지선을 깨버렸다.

중요한 지지선은 6,800선이었는데 이조차 붕괴했다. 더 심각한 것은 신용 거래의 레버리지 청산이다. 현물 이탈금(주식을 담보로 일반 대출을 받은 금액)은 100조 초반까지 빠져 있고, 신용 잔고는 30조~33조대까지 올라가 있다. 신용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시장이 계속 내려가면 신용 거래자들의 증거금 부족으로 자동 청산이 일어난다. 그러면 더 많은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이것이 다시 지수를 끌어내린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 분석가들은 현재의 하락세가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추세 전환의 신호로 보고 있다. 다음 주 초반에 추세 돌파(위로든 아래로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중동 전쟁, 금리 4.7%, 유가의 동시 상승

매크로 악재도 몰렸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유가가 연일 올라가고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WTI도 90달러대까지 올라왔다.

금리도 상승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7%에 도달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간 동안 5%를 근처까지 올라간 수준이다. 30년물 장기채는 이미 5%를 넘어섰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다. 정부가 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다음 달 FOMC(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이 나올 확률이 80%까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 메모리, 한국을 추격 중… 4년의 감산이 초래한 대가

또 다른 장기적 위협이 드러났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 메모리(CXMT)가 상장을 앞두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중국 반도체의 가파른 성장이 있다.

중국의 DRAM(동적 메모리) 시장점유율이 이미 10%에 도달했다. 이는 한국이 잃어버린 시장점유율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난 4년간 메모리 가격이 하락했을 때 한국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감산으로 수익률을 유지하려 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그 틈을 타서 생산을 늘렸다.

문제는 한국 업체들의 전략이 틀렸다는 점이다. 중국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4년 전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렸다면 가격 하락은 약간 컸을지 몰라도, 중국 기업들의 성장을 조기에 짓눌렀을 수 있었다.

현재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중국의 메모리 시장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한국 업체들은 이제 물량 공세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수익성보다 시장 점유율 회복이 급해진 것이다.

NAND 플래시 메모리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중국 업체(양자 메모리)의 시장점유율이 이미 1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현재 추진 중인 대규모 투자가 나중의 카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써야 할 긴급 대응이 된 이유다.

외국인 수급 싸움, 신용 경색… '가짜' 신호에 흔들리는 시장

외국인의 수급 싸움도 격화했다. 지난 10일간 외국인은 11조 원대를 매수했다고 알려졌지만, 오늘 하루에만 4조5천억 원대를 매도했다. 상반기에 150조 원대를 팔았던 외국인들이 최근 며칠간 사면서 희망을 주었지만, 그것은 일시적 반등을 노렸던 움직임으로 보인다.

외국계 증권사들의 리포트도 제각각이다. JP 모건은 "코스피가 12,500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가, 모건 스탠리는 "9,000까지 간다"고 한다. 같은 시간대에 나온 상반된 신호는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업계 평가는 "10조를 팔기 위해 5조를 산다"는 식의 시장 조종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신용 경색 우려도 커졌다. 신용 거래 잔고가 높은 상태에서 시장이 계속 빠지면, 신용 거래자들이 강제 청산되면서 추가 매도 물량이 쏟아진다. 이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의 '승자'는? 조선·사료·신재생에너지·신용주

이 혼란 속에서도 업종별로 강약이 갈렸다.

  • 조선 업체: 미국의 군수 건조 얘기가 나오면서 강세를 보였다. 한미 양국이 조선 협력센터 개소를 추진 중인 상황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 사료 업체: 이란 공습으로 홍해·호르무즈 해협이 위협받으면서 해상 물류가 차질을 빚을 것 같다. 이에 따라 기초 소재를 기반으로 하는 비료와 사료에 대한 공급 우려가 매수를 유도했다.

  • 신재생에너지·태양광 업체: 유가 상승으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개장 6시간 중 6시간을 강세로 유지했으나, 막판에 다시 반락했다.

  • 신용주: 신용 거래 경색으로 신용 관련 금융 종목들이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신용거래에 특화된 증권사 등이 매수 대상이 되었다.

  • 삼성바이오: 시장 전체가 요동치는 와중에도 10% 정도의 굳건한 상승을 기록했다. 4분기 최대 실적 발표가 뒷받침됐다.

결론

오늘의 이슈는 반도체라는 하나의 업종을 관통한다. 인텔의 실적 호실로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밝아 보이지만, 빅테크 기업들의 현금흐름 악화 신호가 시장 전체를 얼게 만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의 추격이다. 4년 전의 감산 선택이 지금 한국 반도체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투자 확대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하면, 향후 수년간의 시장 점유율 구도가 결정될 수 있다.

지금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

  1. 다음 주 FOMC 금리 결정: 금리 인상이 나오면 성장주의 평가 이익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인상 확률이 80%까지 올라간 만큼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2.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대응: 중동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 추가 조치가 나올지 여부가 유가와 금리를 좌우한다. 현재는 '절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지만 주말 사이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

  3. 외국인의 현물 매수 여부: 선물 시장에서의 공방도 중요하지만, 현물 시장에서 외국인이 계속 매수를 이어가느냐가 진정한 저점 형성의 신호다. 오늘처럼 대량 매도가 이어지면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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