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펀더멘탈은 멀쩡한데 반도체만 폭락하는 까닭

지난 24일 미국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4.25% 급락했다. SK하이닉스 ADR은 8.81%, 마이크론은 6.99%, 인텔은 7.89% 내렸다. 그러나 AI 산업의 근본적인 펀더멘탈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오히려 옵션 만기, 전력 인프라 불안, 단기 수급 이슈가 맞물려 나타난 기술적 조정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내 증시도 마찬가지다. 코스피는 9,300까지 올랐다가 6,500대까지 내려왔다. 반도체는 특히 심각하다. 삼성전자를 보면, 올해 4월말 고점은 23만원대였다. 5월말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가 예고되자 27만원까지 올랐다. 출시 직후엔 38만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24만9천원에서 맴돈다. 9개월 사이 약 50% 하락한 셈이다.

고점 매수자의 곤경…개인·기관·외국인 모두 '단기 매매'로 전환

투자 주체별로 수급이 엇갈리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난 25일 장중에는 기관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매도했고, 개인이 적극 매수했다. 장이 반등하자 개인은 곧바로 반대로 매도 1·2위에 올랐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장중엔 매수했지만 종가 무렵엔 23만주대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고점 근처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가 크다. 8천500~9천원대에 진입한 사람들이 다수인데, 당분간 전고점인 9천선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술적으로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매물대가 첩첩이기 때문이다. 현재 PER 기준 4~5배 수준이지만, 전고점을 회복해도 6배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약세 심화 요인이다.

AI는 끝나지 않았다…싸게 사는 쪽이 정답

그럼에도 업계는 AI 사이클 종료를 단정하지 않는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AI 정점에 대해 단정할 만한 내용은 아직 없다"며 "조금씩 싸게 사자는 입장"이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마이크론도 이번에 급락했지만, 세계 최저 밸류에이션의 빅테크라며 매수 기회를 강조하는 보고서가 계속 나온다.

다만 현 시점의 반등은 단기 수급 조정일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론·마이크로소프트·메타의 실적 발표와 이번주 FOMC 결정이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만약 긍정적 가이던스가 나오더라도, 시장 심리가 이미 하락 모드로 전환된 상태라서 급반등은 어려울 수 있다. 투자자들이 나쁜 소식에 민감해지는 '하락장 바이어스'가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다음주 증시를 흔들 '유가'…중동 불안이 변수

유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난 26일 WTI 유가는 배럴당 90달러대에 진입했다. 과거 전쟁이 격화됐을 때 110~120달러까지 치솟던 기억이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계속 휘두르고 있고(국내 12.5%, 5%), 이란과의 분쟁도 고조되고 있다.

이란 문제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타격을 할지,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지 결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단기간 내 해결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다음주 증시의 핵심은 "유가가 안정되느냐"다. 주말 동안 긍정적인 뉴스가 나와 유가가 내려가면, 월요일 개장에 빠른 반등이 가능하다.

방위산업 본격 수주 시대…KF-21부터 조선까지

반도체의 약세 한편, 방위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KF-21 전투기의 무장 자립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특히 한국판 미티어라 불리는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개발이 기존 예정보다 3년 앞당겨졌다. 원래 2032년 완료 예정이었지만, 수출 시장(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폴란드·중동)의 수요가 높아져서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한화오션이 미국방부로부터 미사일 시험 계측선 3조원 규모를 수주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업체의 핵심 국방 장비 건조를 공식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한미 조선 협력 센터도 워싱턴에 설립된다. 조선주의 밸류에이션은 현재 11배 수준(고점 17배 → 현재 PBR 기준 대비)으로 떨어져 있어, 실적 발표가 이어지는 3분기부터 순환매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의 AI 클라우드 전략…기술주 판도 변화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손을 잡으며 아시아 AI 클라우드의 중심 기업으로 전환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 순방에 이해진 의장이 동행했고, 네이버 임직원 30명이 캐나다 자산운용사 브루필드를 방문해 자금 조달과 데이터센터 사업 방향성을 논의했다. 이는 단순한 실무 회담을 넘어 사업 기본 계약을 완료하고 세부 사항을 확정하는 단계라는 분석이다.

네이버는 세종에 1GW 용량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발표했으나, 자금력에 대한 시장의 의심으로 주가는 30만원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엔비디아와의 구체적 협력이 드러나면서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는 보유한 GPU 자산과 소보린, 로봇 기술 등 미활용 자산이 많다는 점에서 향후 기술주 재편의 핵심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수급 왜곡의 주범…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31일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예탁금 상향이 조기 시행된다. 이로 인해 레버리지 매매 진입 문턱이 높아지는데, 역설적으로 기존에 레버리지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문제다. 손절할 돈을 마련하려 다른 종목을 팔기 시작하면, 레버리지 비중은 더 올라가고 다른 종목들은 박살난다.

실제로 코스피는 레버리지 출시 시점인 5월27일 이후 급락했다. 이는 펀더멘탈 악화보다 수급 이탈이 훨씬 강했다는 뜻이다. 결국 많은 종목이 불합리적으로 싼 상태다. 궁극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회복되어야 이 악순환이 끝날 수 있다. 다만 당분간은 시장이 '팔자' 모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결론

반도체 약세는 AI 사이클 종료 신호가 아니라 단기 수급 이상 현상이다. 유가 안정 여부가 다음주 증시의 관건이며, 방위산업과 네이버 같은 기술주 재편이 새로운 기회다. 고점에서 매수한 개인들은 단기 대반등에 기대기보다, 중기 수익 손절과 저가 매매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번주 FOMC와 빅테크 실적 발표가 시장 방향을 결정할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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