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품목을 집중 지원하는 '생산세액공제'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 반도체, 태양광, 2차전지, AI 로봇, 풍력, 핵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6개 분야의 국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구조다. 지난 28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정책 자료에 따르면,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일본의 산업 지원책과 유사한 형태로, 국내 공급망 구축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투자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 정책 전환
그동안 정부의 세제 지원은 주로 투자(자본지출)와 연구개발(R&D)에 집중됐다. 기업이 신규 시설을 짓거나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초기 단계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매년 추가 투자를 일정 수준 이상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이 이미 생산 단계에서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정부는 지난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국내생산세액공제 도입을 공식 예고했다. 세수 부족과 통상 마찰 우려로 그동안 도입을 미뤄왔지만, 기술 경쟁이 심화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글로벌 사례와의 비교: 구체적 지원 규모
해외의 생산세액공제는 이미 품목별로 구체화되어 있다.
미국의 IRA 사례
- 태양광 모듈: 와트(W)당 7센트
- 반도체 웨이퍼: ㎡당 12달러
- 풍력 블레이드: W당 2센트
일본의 지원 방식
- 반도체 이미지 센서: 한 장당 1만8000엔
- 친환경 소재(그린케미칼): 톤당 5만엔
한국의 6대 품목은 미국과 일본이 이미 시행하는 바와 동일한 전략적 품목들이다. 이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글로벌 표준을 따르면서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한국판 설계: 정액제와 국내 판매분 한정
정부는 미국·일본과 달리 정액제를 채택할 방침이다. 정률제(비용의 일정 비율을 공제)가 아닌 생산량당 일정액을 깎아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재정 관리가 더 용이하고, 예산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물량에만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수출품에는 제외한다는 뜻이다. 이는 통상분쟁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우려를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다.
다음달 초 발표될 세제개편안에서 6대 품목만 명시되고, 세부 내용(예: 2차전지의 경우 셀이나 모듈 단위 등록)은 시행령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적자 기업 대상 '보조금 병행' 카드
흥미로운 점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몇 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세액공제는 세금을 내야 혜택을 볼 수 있으므로, 이들 기업은 현행 제도로는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생산량에 비례해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세액공제와 현금 보조금을 병행하는 이중 지원 구조를 고려한 것이다.
실무적 시사점: 기업의 준비 방향
김빛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핵심 성장동력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지원 분야의 주기적인 재평가를 통해 기존 세제와의 중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시장 변화와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6대 품목의 중요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고, 국제 상황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정부의 생산세액공제 도입은 미국·일본과의 글로벌 산업 경쟁에 본격 대응하겠다는 신호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관련 기업들은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 정책 세부 내용 모니터링: 다음달 초 세제개편안과 향후 시행령 발표를 면밀히 추적하고, 자사 생산 품목이 정확히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확인할 것
- 생산량 및 원가 구조 정리: 생산 단위(셀, 모듈 등)별로 수익성을 분석하고, 공제액 계산 기준에 대비할 것
- 적자 기업의 보조금 신청 준비: 현금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생산량 증명 자료와 회계 기록을 정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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