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과 함정 사이
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 문제는 결국 주권자 국민 선택"이라고 발언한 직후, 많은 논평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현행 헌법 128조 2항이 있으니 이 대통령 재임 중 개헌이 이루어져도 본인에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통상 재임 중인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 논리가 맞다면 조정식 의장의 발언은 단순한 원론일 뿐, 현직 대통령 연임을 의도적으로 열어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야당은 왜 이렇게 강하게 반발할까.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 자체에 "일절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 128조, 정말 우회 불가능한가
헌법 128조 2항이 실제로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조원철 법제처장은 같은 날 국정감사에서 개헌 시 이 대통령부터 연임제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여지를 열어둔 상태다.
핵심은 이것이다. 헌법 128조 자체도 개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이 조항이 "현직 대통령 보호 조항"에서 "국민 주권 행사의 대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정식 의장의 "국민 선택" 발언이 신호하는 것이 바로 이 재해석의 여지다.
정치권의 진짜 싸움은 따로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 보이콧'까지 언급하는 것은 헌법 조항의 법리 때문이 아니다. 개헌 논의 자체가 시작되는 순간 여론 전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장동혁 대표의 발언이 이를 드러낸다. "이 대통령이 절대 연임 안 하겠다는 말만 하면 개헌 논의에 착수하기 쉬울 것"이라고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드디어 속내를 드러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는 조정식 의장의 발언이 정치적 신호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원론적이든 아니든, 야당이 감지한 것은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정치적 기조"다.
놓치기 쉬운 두 가지 리스크
첫째, 개헌 논의가 더이상 '권력 구조 개편' 일반론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성' 중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 내에서도 "개헌 논의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 그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개헌 논의 자체가 시작되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헌법 해석의 유연성 자체가 정치적 도구가 될 가능성이다. 법제처장 발언에서 보듯 "국민이 결단하면 된다"는 식의 해석이 확산된다면, 헌법의 명확성과 구속력이 훼손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현직 대통령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조정식 의장이 국회의장실을 통해 "헌법 128조 2항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진화했지만, 이미 정치적 신호는 전달된 상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움직임이다.
- 개헌특위 구성과 의제 설정: 현직 대통령 연임이 개헌의 중심 의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가
- 야당의 개헌 참여 여부: 국민의힘이 실제로 논의 거부를 관철할 것인가, 아니면 협상의 장으로 나올 것인가
- 여당의 실제 의도 드러나기: 이번 발언 파동이 '진짜 속내'를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내부 온건파와 강경파의 줄다리기인지
지금 단계에서는 "헌법 128조가 있으니 괜찮다"는 안이한 평가보다 정치권이 이 조항을 어떻게 다룰 의지가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법리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론
조정식 의장의 발언은 "원론" 또는 "속내 노출" 중 하나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성에 대한 법적 유연성을 정치권에 제시한 신호다. 헌법 128조가 있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헌법 조항 자체도 개헌의 대상이며, 그 해석도 정치적 합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동작을 주시하자:
- 여당의 개헌특위 의제 발표 내용 확인
- 야당이 개헌 논의에 참여할지 여부 판단
- 법제처와 헌법학자 집단의 공식 입장 변화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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