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이 갤러리로 변신하다
서울 평창동과 한남동에서 관례적이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고급 단독주택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하우스갤러리' 추세다. 신발을 벗고 따스한 원목 바닥을 밟으며, 햇살이 잘 드는 창가의 그림을 감상하고, 식탁 위의 조명등을 바라본다. 갤러리의 무균질한 침묵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미술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다.
대표 사례가 평창동의 '박동훈가'다. 충무로에서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는 박동훈 대표가 거주하던 지상 2층·지하 1층 규모의 저택에서 현재 '하우스 인 모션' 전시가 진행 중이다(31일까지). 현관에서 욕실, 드레스룸까지 모든 공간에 조각과 사진, 가구와 설치 작품이 배치됐다. 특히 다이닝룸 식탁 위로는 작가 김준수의 조명등이 달려 있고, 욕실 근처 바닥에는 북청사자놀음에서 영감을 얻은 대형 천이 깔려 있다. 관람객은 이 천을 밟고 지나가며 작품과 상호작용한다.
한남동의 '라니서울'도 같은 맥락이다. 유엔빌리지길의 2층 단독주택을 전시장으로 개조한 이곳은 2023년 7월 개관 이후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회화와 사진을 소개해 왔다. 공간 컨설팅 전문가인 박정애 라니앤컴퍼니 대표는 "첫 인상에서 '서울 안의 유럽'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집의 고유한 분위기를 살린 공간 설계에 주력했다.
거시 배경: 경험 소비와 자산 활용의 진화
이 현상은 거시 경제와 소비 문화의 변화를 반영한다.
첫째, 고소득층의 경험 소비 고도화다. 박동훈 대표의 발언이 핵심을 담는다. "첫아이를 낳고 30년간 일하느라 집에서 사계절을 제대로 즐겨 본 적이 없다"며 집과 이별하는 시간을 갖자는 생각으로 전시를 구상했다. 또한 "집에 걸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한 '기운 센' 작품들도 일상에서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는 발언은 미술 감상의 영역을 생활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둘째, 프리미엄 부동산의 다중 수익화 전략이다. 평창동과 한남동의 저택은 순수 거주 자산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의 가치 재정의가 가능한 최고 등급 부동산이다. 주거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한정된 기간 문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산의 유휴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셋째, 탈 집중식 미술 감상 공간의 수요 증가다. 전통적으로 대형 미술관이 문화 소비의 중심이었다면, 하우스갤러리는 소규모지만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한다. 라니서울이 2023년 이후 3년 이상 지속 운영 중인 것은 이 모델이 단순 일회성이 아님을 의미한다.
향후 흐름을 가늠하는 신호들
박동훈 대표는 "반응이 좋아 연말까지 다양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인사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박정애 대표 역시 광화문 '올리브 베터', 인천 송도 'SK바이오사이언스 헤드쿼터 R&D센터' 등 다수의 프리미엄 공간 프로젝트를 주도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하우스갤러리가 임시 현상이 아닌 체계적 공간 전략으로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다만 주목할 조건도 있다. 이 트렌드의 지속성은 평창동·한남동의 장기적 선호도 유지, 고소득층 가처분 소득의 경험 소비 투입 여건, 국내 젊은 작가 작품에 대한 시장 수용성에 달려 있다.
결론
'하우스갤러리' 현상은 서울의 고급주택 시장이 순수 거주 기능을 넘어 문화적 경험 공간으로 정의되는 변곡점을 반영한다. 2023년 라니서울의 개관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2026년 현재 평창동에서 본격화하는 것은, 고소득층의 자산 활용이 보다 정교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활용을 위한 다음 단계:
- 고급주택 소유자: 부동산 이별 시점에 임시 문화 공간 운영으로 자산가치의 추가 창출 검토
- 문화예술 사업가: 지역 기반 소규모 갤러리 운영으로 중앙 집중식 미술관 시장의 대안 모색
- 부동산 투자자: 평창동·한남동의 문화시설화 추이가 장기 자산 보유가치에 미치는 영향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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