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직행한 선택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7월 30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이들은 예상했을 것이다. 관저나 대사관, 관계 기관을 먼저 방문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첫 발걸음은 달랐다. 공항에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오후 6시쯤 서울 영락교회를 찾았다. 부모가 다녔던 그 교회로.
단순한 신앙 활동을 넘어서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실향민이 세운 교회
영락교회는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에서 월남한 교인들이 세운 곳이다. 6·25전쟁으로 피란하며 분단의 상흔을 안은 실향민들이 믿음의 자리를 만들었다.
스틸 대사의 부모도 한국에 머물 당시 이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그녀에게 영락교회는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다. 부모의 아픔, 세대를 거쳐 전해진 신앙, 분단의 역사 자체가 모여 있는 공간이다.
실향민 2세인 그녀는, 부모 세대의 무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려받은 사람이다.
방명록의 다짐
스틸 대사가 영락교회 방명록에 남긴 글귀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여정을 기도로 시작하게 돼 매우 기쁘다. 여기 있는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외교 임무에 대한 감사, 부모의 신앙에 대한 존경, 무거운 책임을 지기 전에 영혼을 다잡는 시간.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걱심
이 소식을 본 사람 중에, 실향민 가정의 후손이거나 분단의 상흔을 물려받은 누군가가 있다면?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을 안고 산다:
- 나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가
- 부모의 아픔을 어떻게 담아내나
- 과거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스틸 대사가 한국 도착 직후 영락교회로 직행한 선택이, 그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역사를 마주하면서도, 신앙과 희망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현안 앞에서 붙잡는 것
스틸 대사는 31일 기고문에서 한미 양국의 현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우리 앞의 도전 과제를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상호 이익을 위한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쿠팡 사태부터 핵추진 잠수함 건조까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무거운 짐을 지기 전에, 먼저 부모의 신앙이 살아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현안을 풀어나갈 때도, 성급함 없이 정성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
과거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것.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믿음을 지키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 한 발씩 내딛는 것.
스틸 대사가 부임 첫날 보여준 선택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는 이 소식을 보며 다시 생각할 것이다. 내 안의 역사와 신앙이, 결코 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락교회처럼, 세대를 넘어 그 빛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가 그것이다. 과거의 무게를 지면서도,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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