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접할 때면 항상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가족사가 밝혀지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 말이습니다. 최근 배우 하영을 둘러싼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논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사실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13년 전에 누군가 이미 같은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3년 전 익명의 고백, 오늘 밝혀지다
2013년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익명이니까 고백할 수 있는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을 안상호 증손주라고 밝힌 그 글쓴이는 솔직했습니다.
"우리 증조부가 고종 황제 독살 의심을 받은 어의였다"
"일제 때 별탈없이 잘 산 걸 보면 증조할아버지를 시작으로 할아버지도 친일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결국 터져 나온 진심:
"XX 더럽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난 게"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 온전히 혼자만의 자책이었습니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2026년 8월, 배우 하영이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자신의 증조부가 안상호라고 공개하면서 그 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역사가 말하는 안상호는 이렇습니다. 한국 최초 개업의로 널리 알려진 그는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역사학자 박영석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피습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1910년 8월, 목숨을 건진 이완용은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앞장섰습니다.
누군가는 벌써 그 무게를 알고 있었습니다
1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익명의 글쓴이는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요? 자신이 태어난 집, 자신이 속한 가족이 역사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버린 순간의 그 무거움 말입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지금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겁니다.
-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정의하는 건 아닐까'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버린 건 아닐까'
- '당시에는 몰랐다는 게 변명이 될까'
하영은 처음 입장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고 사과했습니다.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이 담아낸 건, 그만큼 이 무게가 갑작스럽고 버거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
하지만 생각해봅니다. 그 13년 전 글쓴이가 맞게 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알아버린 것입니다.
가족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것은 그 가족에 속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대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2013년의 그 글쓴이도, 오늘 논란의 중심에 선 하영도 결국 같은 길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속한 가족의 과거를 아는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우리는 타인의 과거로 그 사람 전체를 재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으로는 그 사람의 지금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괜찮을까, 미안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며 밤을 새웠던 그 사람이 오늘 보여주는 것들—그것이 우리가 봐야 할 것입니다.
결론
처음엔 무거웠던 뉴스가 이제는 다르게 읽힙니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누군가는 혼자 이 무게를 안고 있었고, 그것을 마주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 역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기
- 마주한 불편한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기
- 과거를 직시하는 사람의 용기를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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