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 명시적 인정
서울중앙지법은 27일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환수 판결 규모는 약 1억 9400만원이다. 이틀 전인 26일에도 같은 법원은 빗썸이 오지급 수령자를 상대로 제기한 약 500만원 규모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도 빗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발생한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와 관련해 빗썸이 진행 중인 전체 4건의 반환 소송 중 절반이 이미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번 판결의 법적 의미는 법원이 가상자산을 민법상 부당이득 반환의 대상으로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이다. 부당이득 청구가 성립하려면 수령자가 법적 원인 없이 경제적 이익을 취득해야 한다. 법원이 부당이득으로 판단했다는 것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단순한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재산상 권리가 있는 무형자산으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판례의 축적과 법적 합의의 형성
이번 판결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2023년 8월 글로벌 거래소 바이비트가 프로그램 오류로 국내 이용자에게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 1530만개를 오지급한 사건이 선례가 된다. 지난 2월 서울북부지법 제13민사부는 미회수된 테더 173만 9236개에 대해 피고에게 해당 자산을 바이비트에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는 이 같은 판례의 축적이 빗썸 승소의 배경이라 평가한다. 법무법인 비컴의 차상진 변호사는 "법원에서 부당이득으로 본 것은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며 "경제적 가치가 없으면 질권설정도 안 되고 손해배상 청구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황석진 교수는 "이번 판결로 가상자산에 민법상 부당이득 반환원칙이 적용된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해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효봉 변호사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재산적 가치가 있다는 법원의 여러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착오로 지급한 것에 대한 부당이득이 성립됐다"고 지적했다.
산업 규제의 '재산적 가치' 논쟁과 법원의 실질적 입장
이번 판결은 한국 가상자산 규제의 이중구조를 드러낸다. 법적으로 가상자산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은 경제적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특정금융거래법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를 관리하지만, 가상자산 자체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런 와중에 법원의 판결들은 실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상자산을 '재산'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쌓이고 있다. 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규제 공백을 법원이 실질적 판단으로 메우는 양상이다.
남은 소송과 향후 전망
빗썸은 여전히 2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피고별 부당이득금 규모는 각각 약 5억원과 1480만원이다. 법조계는 1심 연승의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판례의 축적과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더 큰 시사점은 이 판결이 가상자산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다.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뿐 아니라 손해배상, 질권설정, 상속 문제 등 가상자산을 포함한 다양한 민사 분쟁에서 '재산으로서의 지위'가 점진적으로 확립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거래소 이용자의 자산 보호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규제 공백을 법원 판결로 채우는 것의 한계도 있다.
결론
빗썸의 1심 승소는 기술적 사고로 인한 일회적 사건을 넘어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장기적 변화를 시사한다. 법원이 경제적 실질을 기준으로 가상자산을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는 현 흐름이 계속되면, 규제 입법과 산업 정책도 이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다음 단계:
- 가상자산 관련 민사 분쟁에 직면한 이용자나 거래소는 이 판례를 참고해 법적 입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 업계는 법원 판례의 흐름을 모니터링하면서 자체 리스크 관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 정부는 법원 판결에 의존하지 않고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추진할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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