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국회 의결, 정산기한 일률 단축 시작
국회 정무위원회는 9월 1일 대규모유통업자의 정산기한을 단축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결했다. 직매입의 경우 현행 60일에서 35일로 25일 단축되고,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는 40일에서 20일로 20일 단축된다.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를 앞당기고 거래 안전성을 높이려는 의도지만,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즉시 우려를 제기했다.
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를 앞당기고 거래 안전성을 높이려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산기한을 일률적으로 단축하면 유통업체의 운전자금과 정산 시스템에 급격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인: 유동성 부담과 재무 악화 메커니즘
정산기한 단축의 핵심 문제는 현금 흐름의 악순환이다. 온라인쇼핑협회에 따르면, 직매입의 경우 유통업체가 상품 소유권과 재고·판매 위험을 직접 부담한다. 25일 단축은 재고가 판매되기 전에 대금을 지급하는 사례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결과는 연쇄적이다. 선입금으로 인한 단기 차입과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재무구조와 신용도가 악화된다. 유통업체의 운전자금이 부족해지면, 판매가 불확실한 신상품이나 회전율이 낮은 중소기업 상품보다 대기업 인기상품이나 저가 수입상품을 우선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협회는 더 근본적인 불공정을 지적한다. "대규모유통업법이 모든 납품업체에 일률 적용되면 협상력이 충분한 대기업 납품업체에도 같은 혜택이 돌아가는 반면, 정작 보호가 필요한 신규·중소 납품업체가 거래 축소의 부담을 먼저 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전망: 학계 시뮬레이션 결과와 시장 양극화
가능성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6년 한국유통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은 정산주기를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하는 1년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거래생존율은 평균 74.0%로 추정됐으며, 직매입형 플랫폼 납품업체는 68.9%, 운전자본이 취약한 플랫폼은 48.0%에 머물렀다. 이는 곧 중소기업과 자본력 약한 업체의 거래 단절 위험을 의미한다.
시장 구조의 변화도 심각하다. 시장 양극화 지수는 60일 시나리오 대비 평균 2.4배 높아졌고, 사회적 후생은 평균 8.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산기한 단축이 보호 약자를 오히려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학계의 경고다.
추가 우려: 반품 구조와 기업 신용도
협회는 온라인유통과 홈쇼핑의 특수한 반품·환불 구조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약철회와 반품·환불, 카드정산, 소비자 불만 처리 등이 완료돼야 매출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직매입 상품 역시 표시사항 검수·인허가·품질·수량 검수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정산 단축의 현실성을 의문케 한다.
더불어 유동성 취약 기업에 일률적인 조기 지급 의무를 더하는 것은 회생과 채권 변제 재원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협회는 "제2의 홈플러스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결론
정산기한 일률 단축은 정책 취지와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납품업체 보호라는 목표와 달리, 현금 흐름이 악화된 유통업체들이 중소 납품업체를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협회와 학계의 분석이다. 다음 단계는 두 가지다.
첫째, 정책 입안자들은 정산기한 일괄 단축이 아닌 차별화된 기준 —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 유통업체, 직매입과 위수탁 등 거래 형태별로 다른 정산주기를 검토해야 한다.
둘째, 자금 부담을 겪을 유통업체들은 사전에 유동성 계획을 점검하고, 공급망 다변화나 인수금융(카드결제 할인) 확대 같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산 개혁이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도라면, 그 의도가 현실에서도 작동하는지 검증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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