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아파트값의 거래 현장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용면적 84㎡의 국민평형(국평)이 같은 단지의 중대형 아파트보다 더 비싼 값에 거래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성동구 하왕십리동 청계벽산에서 84㎡는 17억 1000만원에 팔린 반면, 같은 달 9일 114㎡는 15억 6000만원에 거래되었다. 면적이 30㎡ 작은 아파트가 1억 5000만원 비쌌다는 뜻이다. 관악구 봉천동 관악우성에서도 84㎡가 11억 8500만원, 114㎡가 10억 6000만원에 팔려 1억 2500만원의 역전이 발생했다.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벽산에서는 84㎡가 9억원, 114㎡가 8억8000만원에 거래되며 같은 패턴을 보였다. 이는 과거 부동산 시장의 상식을 깨는 거래 양식이다.
이 같은 가격 역전 사례는 올해 들어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에서 84㎡가 85㎡ 이상 주택보다 비싸게 거래된 사례는 386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47건의 2.6배 수준이다. 가격 역전이 발생한 단지 수도 84곳에서 162곳으로 2배 늘었다. 지역별로는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비강남권이 중심인데, 관악구(52건), 성북구(51건), 동대문구(39건), 구로구(34건), 은평구(31건), 강북구(30건), 강서구(28건) 순으로 집중되어 있다.
규제와 세제 개편이 부른 시장 재편
이 현상의 근저에는 정책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대출 규제와 토지거래허가제의 누적 효과가 시장의 수급 구조를 크게 바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먼저 전월세 시장의 위축이 명백하다. 대출 규제와 토지거래허가제로 인해 전월세 공급이 급격히 감소했고, 이는 집주인들의 수익성 악화를 뜻한다. 동시에 세제 개편에 따른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보유세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집주인들의 매도 의사를 자극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주도권이 실수요자로 급속도로 이동했다. 강북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출 부담이 작고 나중에 팔기 쉬운 30평대 문의가 가장 많다"며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일부 정책 대출과 사내 대출에 면적 제한이 적용되는 점도 84㎡ 수요 집중을 뒷받침한다. 즉, 제한된 대출 한도와 상환 부담을 고려한 실수요자들이 국평이라는 '가능한 최대 면적'에 모여드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당분간 지속될 가격 역전의 신호
현재의 역전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핵심 질문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이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출·세제 규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재편이 일어났고, 이는 정책이 급격히 완화되지 않는 한 쉽게 바뀌기 어렵다. 동시에 서울 외곽의 15억원 이하 저가 아파트에서는 지속적으로 신고가 거래가 나오고 있다. 이는 실수요층 내에서의 공급 부족이 심각함을 암시한다.
다만 정책 변화의 여지도 남아 있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검토 중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부동산 세제를 추가로 수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장기보유특별공제 한도 조정, 종합부동산세 세율, 비거주 1주택자 과세 방식 등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세제가 완화된다면, 현재의 가격 역전 현상도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 정책 신호를 읽는 시장
현재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정책과 실수요의 불균형이 만든 가격 역전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84㎡ 국평이 중대형보다 비싼 현상은 단순한 수급 불일치가 아니라, 대출 규제·토지거래허가제·세제 개편이 실제로 시장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가시화한 것이다.
실무 차원의 고려사항:
- 서울 외곽 실거주 수요자라면, 대출 한도와 상환 능력을 감안했을 때 84㎡가 가장 합리적 선택지일 수 있다는 점 재확인
- 가격 역전 현상이 지역별(강북·관악·성북·동대문)로 집중되는 패턴을 관찰하여 각 지역의 수급 상황 파악 필수
- 정부의 세제 개편 국회 의결 결과를 주시하고 정책 변화에 따른 시장 구조 재편에 대비
규제와 세제 개편은 부동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된 지 오래다. 현재의 국평 가격역전 현상은 그 손의 작동 방식을 명확히 드러내는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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