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23년 의사 국가시험 수석 25명(공동 수석 2명 포함) 중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택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소아청소년과도 2001년 이후 20년 넘게 명맥이 끊겼다. 최상위권 의사들의 선택 패턴이 현재 의료 시장의 경제적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현황: 필수의료 과 선택의 극단적 편중

수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전공은 내과 9명(36%)였고, 피부과·영상의학과가 각 4명으로 뒤를 이었다. 안과·정신건강의학과·정형외과가 각 2명, 성형외과 1명이다. 시간 흐름에 따라 선호도가 급변했다.

2000년대(10명)
- 내과 4명, 피부과 2명, 안과 2명, 정신건강의학과 1명, 소아청소년과 1명

2010년대 이후(15명)
- 내과 5명, 영상의학과 4명, 피부과 2명, 정형외과 2명, 성형외과 1명, 정신건강의학과 1명

특히 영상의학과는 2014년까지 수석 중 한 명도 선택하지 않았으나, 2015년 이후 수석 10명 중 4명이 선택할 정도로 급증했다. 반면 생명 유지에 직결된 바이털 과목들은 역사적으로도 뚜렷한 쇠락을 보이고 있다.

원인: 거시 경제 요인의 불일치

이 현상은 단순한 진료과 선호 변화가 아니라, 의료 시장의 구조적 보상 체계와 리스크 분배의 왜곡을 반영한다.

리스크-보상 불균형

필수의료 과목들은 높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으면서도 업무량 대비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높은 사법 리스크, 업무량 대비 턱없이 부족한 보상 때문에 젊은 의사들 지원율이 높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는 수술·응급 상황으로 인한 의료 분쟁 노출이 높으면서도, 수가 개편 지연으로 경제적 유인이 약화되었다. 수술 시설과 인력 확보 문제로 개원도 어렵다.

영상의학과 선호의 경제적 배경

반대로 영상의학과의 급부상은 명확한 경제학적 신호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 관계자는 "영상 판독 수요가 급증한 데다 사법 리스크가 적고, 환자·보호자 면담 스트레스와 야간·주말 업무 부담도 덜하다"고 설명했다. 저리스크·고수익·생활 편의성의 삼각형이 성립하는 분야만 최상위 인재가 몰린다.

전망: 정책 개입 없으면 필수의료 공급 위기 심화

의료 시장이 개별 의사의 합리적 선택 누적이 아니라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지점에 도달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산부인과·흉부외과를 선택하는 수석들이 종종 나왔다. 당시 전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그때도 인기과는 아니었지만 심장·흉부 분야에 헌신하는 의사들이 존재했다"며 "요즘은 부모들이 자식이 필수의료를 간다고 하면 뜯어말리는 게 현실"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단순한 선호도 변화가 아니라 경제적 신호에 따른 인재 이탈이다. 국시 수석이라는 최정상 의료 인재마저 필수의료를 외면한다는 것은, 보상 체계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공급 위기가 심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영상의학과처럼 리스크와 보상이 맞춰진 분야로의 인재 쏠림은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

필수의료 기피는 개인의 진로 선택이 아닌 시장 실패의 신호다. 정부의 수가 체계 개편, 법적 리스크 완화, 근로 환경 개선 등 정책적 개입 없이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실무자를 위한 실행 과제
- 정책 담당자: 필수의료 수가 인상과 사법 리스크 경감 방안 수립 필요
- 의료 기관: 필수의료 과목의 근로 조건 개선 및 경력 개발 경로 투명화
- 의대생: 현재 시장 신호를 읽되, 필수의료의 공익적 가치와 장기 정책 변화 가능성 병행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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